"로터리 엔진"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세상에서 오직 마쓰다만이 고집스럽게 만들어온 그 엔진이
왜 자동차 팬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는지 오늘 알려드립니다.
코르크 공장에서 시작한 회사가 어떻게 세계 유일의 기술을 지켰는지,
읽고 나면 마쓰다 차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실 겁니다.
1973년 가을, 히로시마
오일쇼크가 마쓰다를 덮쳤습니다. 연비가 나쁜 로터리 엔진 차들이 갑자기 안 팔렸고, 재고가 쌓였으며, 회사가 흔들렸습니다. 스미토모은행 관리 체제에 들어갔고, "로터리 엔진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마쓰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년 후인 1978년 RX-7이 나왔는데, 로터리 엔진을 달고 나왔고 세상이 열광했으며, 마쓰다가 살아났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기술을 버리지 않은 것이었고, 그 고집이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마쓰다 RX-7 FD 3세대 클래식레드 ㅡ AI 이미지
🔧 1920년, 코르크에서 자동차로
마쓰다의 시작은 자동차와 전혀 달랐는데, 1920년 1월 30일 히로시마에 동양코르크공업주식회사로 설립됐고, 이름 그대로 코르크를 만드는 회사였으며, 와인 병마개 같은 코르크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1927년 동양공업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코르크를 넘어 공업 전반으로 사업을 넓혔고, 1931년 삼륜 트럭 마쓰다호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자동차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마쓰다라는 이름이 됐냐면, 2대 사장이 마쓰다 주지로였는데,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고, 동시에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에서도 영감을 받았으며, 빛처럼 밝고 지혜롭게 나아가겠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는데, 마쓰다 공장은 히로시마 시내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폭탄의 직격은 피했지만 충격파와 화염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직원 수백 명이 희생됐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마쓰다는 삼륜 트럭 생산을 재개했는데, 전후 복구에 필요한 물자 운반을 책임졌고, 히로시마 재건에 기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기술력을 쌓았습니다. 1960년 R360 쿠페로 승용차 시장에 처음 진출했는데, 경차였고 귀여운 디자인이었으며, 저렴한 가격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1967년 마쓰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는데, 독일 NSU 및 방켈과 기술 제휴를 맺고 로터리 엔진을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방켈 엔진은 독일 엔지니어 펠릭스 방켈이 발명한 혁신적인 기술이었는데,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일반 엔진과 달리 삼각형 로터가 회전하는 방식이었고, 이론적으로 훨씬 부드럽고 가벼우며 컴팩트했습니다. NSU가 먼저 이 기술로 차를 만들었지만 신뢰성 문제로 포기했고, 마쓰다가 끝까지 개발해서 1967년 코스모 스포츠로 세상에 내놓았으며, 세계 최초 양산 로터리 엔진 자동차였습니다. 마쓰다 이후 GM, 메르세데스, 시트로엥 등 여러 회사가 로터리 엔진을 시도했는데, 모두 포기했고 마쓰다만 남았으며, 지금도 로터리 엔진을 만드는 자동차 회사는 마쓰다뿐입니다.
🏎️ 1978년, RX-7의 탄생
1973년 오일쇼크로 마쓰다가 위기를 맞았는데, 로터리 엔진의 연비가 문제였고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아무도 로터리 차를 안 샀으며, 재고가 공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로터리를 포기하고 일반 피스톤 엔진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졌는데, 경영진이 흔들렸고 직원들도 불안했으며, 스미토모은행의 관리를 받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 위기 속에서 마쓰다는 포기 대신 개선을 선택했는데, "피닉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로터리 엔진의 연비를 40% 개선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5년간의 노력 끝에 1978년 RX-7을 내놓았습니다. RX-7이 나왔을 때 반응이 열광적이었는데, 아름다운 디자인에 로터리 엔진의 독특한 고회전 특성이 매력이었고, 가격도 합리적이었으며, 첫 해부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RX-7 덕분에 마쓰다가 살아났는데, 1979년 포드가 마쓰다 주식 25%를 인수하면서 재정적으로도 안정됐고,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었습니다.
RX-7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설이 됐는데, 1985년 2세대 FC, 1991년 3세대 FD로 이어졌고, FD가 특히 명차로 꼽힙니다. FD는 13B-REW 1.3리터 순차 트윈터보 로터리 엔진으로 255마력이었는데, 배기량은 작지만 로터리의 특성상 고회전에서 폭발적인 출력이 나왔고, 차체가 가벼워서 리터당 출력이 경쟁 차들을 압도했으며, 핸들링이 교과서 같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애니메이션 이니셜D에서 타카하시 케이스케의 차로 유명해졌는데, 한국에서도 이니셜D 때문에 RX-7을 동경하는 팬들이 생겼고, 명탐정 코난에서도 등장해서 일본 대중문화 속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2002년 RX-7이 단종됐는데, 배기가스 규제를 로터리 엔진으로 통과하기가 어려워졌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마쓰다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2003년 RX-8로 로터리 혈통을 이었고, 2012년 단종됐으며, 2023년 MX-30 R-EV라는 하이브리드 차에 레인지 익스텐더로 로터리 엔진을 부활시켰습니다.
🚗 1989년, MX-5 - 달리는 기쁨의 교과서
RX-7이 로터리 엔진의 상징이라면 MX-5 미아타는 마쓰다 철학의 상징이었는데, 1989년 처음 나왔고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2인승 경량 오픈카 시장이 거의 죽어있었는데, 유럽 로드스터들이 복잡해지고 비싸지면서 일반인이 사기 어려워졌고, "달리는 즐거움"보다 "상태 과시"가 됐습니다. MX-5는 정반대로 갔는데, 가볍고, 단순하고, 저렴하게 만들었고, "빠르지 않아도 재미있는 차"를 목표로 했으며, 진바-잇타이(人馬一体)라는 철학을 담았습니다. 진바-잇타이는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된다"는 뜻인데, 기수가 말의 움직임을 느끼듯 드라이버가 차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무게를 줄이고 직접적인 핸들링을 구현했으며, 전자 보조 장치를 최소화했습니다. 시장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출시되자마자 대기 줄이 생겼고, 자동차 전문가들이 "빠르지 않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차가 있었나"고 감탄했으며, 나중에 "베스트셀러 2인승 스포츠카" 기네스 기록을 세웠습니다.
MX-5는 2024년까지 100만 대 이상이 팔렸는데, 2인승 스포츠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였고, 4세대인 현재 ND까지 이어지며 여전히 팔리고 있으며, 출시 35년이 지나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마쓰다가 이 차로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비싸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달리는 기쁨은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민주적인 철학이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마쓰다가 단순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철학을 가진 브랜드로 인정받는 이유였습니다. 한국에서도 MX-5 팬들이 있는데, 2009년 마쓰다코리아가 설립되면서 공식 판매가 시작됐고, CX-5, CX-30 같은 SUV가 주력이지만 MX-5를 찾는 마니아들도 있으며, "마쓰다는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차"라는 이미지가 형성됐습니다.
마쓰다와 히로시마 - 도시와 함께 살아남다
마쓰다와 히로시마의 관계는 단순한 본사 위치가 아니라 운명적인 것이었는데, 1945년 원폭이 떨어졌을 때 히로시마가 초토화됐지만 마쓰다 공장은 살아남았고, 히로시마 재건의 중심이 됐습니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마쓰다가 삼륜 트럭을 만들어 복구를 도왔는데, 마쓰다 트럭이 히로시마의 벽돌을 나르고 자재를 실어 날랐으며, 도시와 회사가 함께 일어섰습니다. 지금도 히로시마에서 마쓰다는 단순한 회사가 아닌데, 도시의 상징이고 자랑이며, 히로시마 사람들의 자부심입니다. J리그 축구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주요 스폰서도 마쓰다이고, 히로시마 공항 이름도 한때 히로시마 마쓰다 스타디움이었으며, 도시와 브랜드가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 위기 때도, 버블 붕괴 때도 마쓰다가 히로시마를 떠나지 않았는데, 도시가 회사를 지지했고 회사가 도시를 책임졌으며, 그 유대가 마쓰다를 다른 자동차 회사와 다르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습니다.
마쓰다가 로터리 엔진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는데, 경제적으로 따지면 진즉에 포기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우리만의 것"에 대한 집착이 마쓰다의 정체성이었으며, 그 정체성이 팬들에게 진정성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에서 로터리 엔진을 만드는 회사가 마쓰다뿐이라는 것, 달리는 즐거움을 위해 비용 대신 철학을 선택한다는 것, 히로시마의 아픔을 이겨낸 회사라는 것, 이 모든 것이 MAZDA라는 네 글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 2012년, 코도 디자인 혁명
2012년 마쓰다가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발표했는데, 코도(魂動, 혼이 움직인다)였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약동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자동차에 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치타가 달리기 직전 자세를 잡는 순간의 긴장감, 야생동물이 도약하기 위해 몸을 낮추는 순간의 에너지, 그것을 차의 디자인으로 표현하겠다는 것이었고, 추상적이었지만 결과물이 나오자 모두가 이해했습니다. 2012년 CX-5를 시작으로 마쓰다 6, 마쓰다 3, CX-3, MX-5가 코도 디자인으로 나왔는데, 일본 자동차답지 않게 유럽 프리미엄 차 같은 우아함이 있었고, 자동차 디자인 상을 휩쓸기 시작했으며, "마쓰다 차가 이렇게 예뻐졌나"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소울 레드 크리스털이라는 색이 마쓰다의 상징이 됐는데, 일반 빨간색과 다른 깊고 투명한 느낌이었고, 여러 겹의 도장 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타사가 따라 하기 어려운 색깔이었습니다. 코도 디자인 덕분에 마쓰다가 "프리미엄 대중차"로 포지션을 올릴 수 있었는데, 가격은 대중차이지만 디자인과 느낌은 프리미엄이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마쓰다가 차별화를 이루는 방법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마쓰다 코도 디자인의 영향이 뚜렷했는데, 2012년 이전에는 마쓰다를 "저렴한 일본차" 정도로 봤다면, 코도 이후에는 "디자인이 예쁜 수입차"로 인식이 바뀌었고, CX-5와 마쓰다 6가 수입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2024년 현재 마쓰다코리아가 CX-5, CX-30, CX-60, MX-5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충성도 높은 팬층이 있고, "마쓰다를 한번 타면 계속 마쓰다를 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너들의 만족도가 높으며, 코도 디자인과 진바-잇타이 철학이 그 이유였습니다.

마쓰다 MX-5 ND 소울레드 ㅡ AI 이미지
1920년 코르크 공장에서 시작했고,
1967년 세계 최초 로터리 엔진차를 만들었으며,
1973년 오일쇼크 위기에도 로터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78년 RX-7로 살아났고,
1989년 MX-5로 달리는 기쁨을 민주화했으며,
2012년 코도 디자인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마쓰다만이 로터리 엔진을 만들고,
히로시마와 함께 원폭을 딛고 일어섰으며,
달리는 기쁨을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Zoom-Zoom - 달리는 기쁨"
코르크에서 로터리까지 - 마쓰다 1편
일본의 탄생 8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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