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닛산(1편) GT-R·페어레이디 Z - "괴물"이라 불린 일본차의 두 전설

by Zzeus 2026. 6. 23.
반응형

 

"GT-R"이라는 세 글자가 왜 자동차 팬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지 궁금하셨나요?
오늘 이 글에서 그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 드립니다.
닛산이 어떻게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었고,
페어레이디 Z가 왜 세기의 베스트셀러 스포츠카가 됐는지,
읽고 나면 닛산이 전혀 다른 브랜드로 보이실 겁니다. ㅎ

1989년, 뉘르부르크링

닛산 GT-R R32 프로토타입이 처음 뉘르부르크링에서 테스트를 했을 때, 구형 폭스바겐 비틀에 추월을 당했습니다. 테스트 드라이버가 공포에 떨었고, 닛산 개발진이 충격을 받았으며, 그 굴욕이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은 차를 완전히 뜯어고쳤고, 뉘르부르크링을 정복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R32 GT-R은 출시되자마자 그룹 A 레이싱을 29연승으로 석권했는데, 너무 압도적이어서 경쟁자들이 "고질라"라고 불렀습니다. 비틀에 추월당했던 차가 레이스를 지배하는 괴물이 된 것이었고, 그 변신이 닛산 GT-R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닛산 스카이라인 GT-R R32 ㅡ AI 이미지

🏭 1933년, 닷선에서 닛산으로

닛산의 뿌리는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국에서 교육받은 엔지니어 하시모토 마스지로가 닷손(DAT)자동차를 세웠고, 작고 실용적인 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으며, 닷선이라는 이름은 "아들의 차(Son of DAT)"라는 뜻이었습니다. 1928년 아이카와 요시스케가 일본산업이라는 지주회사를 세웠는데, 이 회사가 DAT를 흡수했고, 1933년 닷선 생산 부문을 분리해 자동차제조주식회사를 만들었으며, 1934년 지주회사 이름을 따서 닛산자동차로 개명했습니다. 닛산(日産)은 일본산업의 줄임말이었는데, 이름에서 국가적 야심이 보였고, 처음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었으며, 그 야심이 GT-R과 페어레이디 Z로 이어졌습니다. 1934년 영국 오스틴 자동차와 기술 제휴를 맺었는데, 오스틴 차를 라이선스 생산해 닷선 브랜드로 팔았고,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것이 닛산이 일본 자동차 업계 상위권에 오르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 생산에 동원됐는데, 전쟁이 끝난 후 민수용으로 전환했고, 닷선 소형차로 일본 서민들의 이동을 책임졌으며, 1950년대 닷선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66년 닛산이 프린스 자동차공업을 인수합병했는데, 이게 GT-R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프린스 자동차는 1957년 스카이라인이라는 차를 만들었는데, 고성능을 지향하는 스포티한 세단이었고, 프린스가 닛산에 흡수되면서 스카이라인도 닛산 차가 된 것이었습니다. 닛산은 스카이라인의 레이싱 DNA를 이어받았는데, 프린스 시절부터 쌓아온 기술과 경주 경험이 닛산으로 넘어왔고, 그 유산이 훗날 GT-R이라는 이름을 낳게 됩니다. "기술의 닛산"이라는 별명이 생겼는데, 60여 종 이상의 모델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회사로 평가받았고, 소형차부터 슈퍼카까지 다양한 차를 만드는 독특한 회사였으며, 그 다양성이 닛산의 강점이자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 1969년, 페어레이디 Z의 탄생

1969년 닛산이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차를 내놓았는데, 페어레이디 Z, 미국에서는 240Z라는 이름이었고, 2인승 스포츠카였으며, 유럽 스포츠카의 성능을 일본 차의 가격에 담은 것이었습니다. 직렬 6기통 SOHC 2.4리터 엔진 150마력이었는데, 재규어 E타입이나 포르쉐 911과 비슷한 성능이었고, 가격은 절반 이하였으며, "이런 차가 이 가격에 가능하냐"는 반응이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왔는데, 출시 첫 해부터 연간 3만 대 이상이 팔렸고, 포르쉐와 재규어를 사고 싶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이 Z를 샀으며, "스포츠카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스포츠카를 좋아하는 중산층이 Z를 선택했는데, 의사도, 교사도, 회사원도 Z를 탈 수 있었고,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스포츠카를 대중이 경험하게 된 것이었으며, 그 점에서 페어레이디 Z는 자동차 문화를 바꾼 차였습니다. 이후 Z 시리즈는 계속 이어졌는데, 260Z, 280Z, 300ZX(Z31), 300ZX(Z32)로 발전했고, 2002년 Z33로 부활했으며, 2022년에는 Z34 신형이 나오면서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페어레이디 Z는 단종된 적이 없는 닛산의 영원한 스포츠카 혈통이었고, 50년 넘게 이어지는 역사는 닛산이 스포츠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1969년부터 1978년까지 24만 대 이상이 팔렸는데, 단일 스포츠카 모델로는 당시 세계 최고 판매 기록이었고, 닷선(닛산)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술의 닛산"이 스포츠카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미국 자동차 잡지들이 Z를 칭찬했는데, 로드 앤 트랙이 "세기 최고의 스포츠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고, 일본 차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Z가 큰 역할을 했으며, 이후 일본차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 1989년, GT-R - 고질라의 탄생

스카이라인 GT-R의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세대 C10 스카이라인에 GT-R 버전이 있었고, 레이싱에서 대활약을 했으며, 닛산의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973년 오일쇼크로 GT-R이 단종되었는데, 16년간 GT-R이 없었고, 팬들이 기다렸으며, 1989년 드디어 R32 GT-R이 나왔습니다. 개발 과정이 드라마틱했는데, 처음 뉘르부르크링에서 테스트했을 때 구형 비틀에 추월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개발진이 완전히 다시 만들었으며, 뉘르부르크링을 기준으로 차를 설계했습니다. RB26DETT 2.6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심장이었는데, 공식 출력은 일본 자동차 업계 자율 규제인 280마력이었지만 실제로는 330마력 이상이었고, 터보를 개조하면 600마력, 800마력도 가능했으며, 엔진 내구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ATTESA-ETS라는 전자식 4WD 시스템이 달렸는데, 일반 도로에서는 후륜구동처럼 움직이다가 미끄러지는 순간 앞바퀴로 토크를 배분하는 방식이었고, HICAS 4륜 조향 시스템까지 더해졌으며,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그룹 A 레이싱에 참전했는데, 출전한 29레이스를 모두 이겼습니다. 29연승이었고, 경쟁자들이 할 말을 잃었으며, 외국 자동차 언론이 "고질라"라는 별명을 붙였고 그 이름이 영원히 이어졌습니다.

1993년 R33이 나왔고 1998년 R34가 나왔는데, 세대가 바뀔수록 더 빨라졌고, R34 GT-R은 뉘르부르크링에서 7분 59초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8분 벽을 깼으며, BMW M5 개발팀과 친해질 정도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자주 마주쳤습니다. 2002년 R34가 단종되면서 스카이라인에서 GT-R이 분리됐는데, 2007년 독립 모델 R35 GT-R이 나왔고, 0-100km/h 3.5초, 뉘르부르크링 7분 29초로 포르쉐 911 터보를 눌렀으며, "일본의 슈퍼카"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습니다. 한국에는 2009년 한국닛산이 정식 수입했는데, 가격은 1억 6,530만 원이었고 연간 35대만 한정 수입했으며, 2016년식을 마지막으로 공식 판매가 종료되었습니다. R35 GT-R은 2007년 출시 이후 거의 변화 없이 2024년까지 팔렸는데, 18년 동안 현역이었고,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유지하며, 닛산의 가장 강력한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기술의 닛산" - 엔지니어가 만드는 차

닛산의 별명이 "기술의 닛산"인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GT-R의 RB26DETT 엔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도치기현 공장에서 타쿠미(匠)라고 불리는 장인이 한 명이 엔진 한 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조립했는데, 양산차에 장인 수제 엔진을 달았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었고, 그것이 GT-R을 특별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변속기도 요코하마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대량 생산 라인이 아니라 숙련된 작업자가 직접 만드는 것이었고, 품질 관리가 달랐으며, GT-R이 튜닝에서 무섭게 강해지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페어레이디 Z도 비슷한 철학이었는데, 유럽 스포츠카의 감성과 성능을 일본의 정밀한 제조 기술로 만들었고, 비용을 낮추면서도 품질을 타협하지 않았으며, "좋은 차를 더 많은 사람이 타게 하겠다"는 것이 닛산 스포츠카의 정신이었습니다.

GT-R은 또 다른 의미도 있었는데, 일본 차가 유럽 슈퍼카와 경쟁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슈퍼카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것이었는데,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가 지배했고, 일본 차는 경제적이지만 재미없다는 이미지였습니다. GT-R이 그 편견을 박살냈고, NSX와 함께 일본 고성능차의 시대를 열었으며, 지금 현대기아의 아이오닉 N과 EV6 GT가 달릴 수 있는 길을 닛산이 먼저 열어준 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GT-R은 일본 자동차 역사에서 단순한 빠른 차가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꾼 차였고, 그 레거시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 닛산과 한국의 인연

닛산과 한국의 인연은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기아산업이 1960년대 닛산과 기술 협력을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마쓰다를 선택했지만 닛산과의 인연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삼성자동차가 1990년대 닛산 맥시마 플랫폼을 기반으로 SM5를 만들었는데, 닛산 기술이 한국 럭셔리 세단에 들어간 것이었고, 지금의 르노코리아 SM 시리즈 기반이 닛산에 있었습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덕분에 닛산 기술이 르노삼성을 통해 한국 도로를 달렸는데, 르노삼성 SM6의 플랫폼이 닛산 티아나와 공유됐고, 한국 소비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닛산 기술을 경험했습니다. 2009년 한국닛산이 공식 설립되면서 GT-R, 370Z, 무라노 같은 차들이 들어왔는데, GT-R을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팬들에게 큰 사건이었고, 1억 6천만 원짜리 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닛산 브랜드의 존재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2019년 일본 불매운동 여파와 판매 부진으로 2020년 12월 한국닛산이 영업을 종료했는데, GT-R을 한국에서 정식으로 살 수 없게 됐고, 공식 AS 네트워크도 줄어들었으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GT-R의 존재감은 한국에서 유지되고 있는데, 병행 수입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있고, 개조 튜닝 마니아들이 GT-R을 최고의 베이스 차로 여기며,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GT-R 이야기는 늘 뜨겁습니다. 한국에서 GT-R을 보기 어렵지만 볼 때마다 시선이 모이는 건 그 차가 가진 역사와 의미 때문이었고, 비틀에 추월당했던 차가 고질라가 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1969 닛산 페어레이디 Z 240Z 실버

📺 다음 편 예고

일본의 탄생 7편에서는 "닛산 2편 - 르노 합병, 리프, 그리고 아리야"를 다룹니다.

1999년 카를로스 곤과 르노의 등장으로 파산 직전의 닛산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 리프의 탄생, 그리고 2023년 혼다와의 합병 논의까지 닛산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만나보겠습니다.

일본 시리즈 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1933년 닷손에서 시작해 닛산이 됐고,
1969년 페어레이디 Z로 스포츠카를 민주화했으며,
세기 최고 베스트셀러 스포츠카가 됐습니다.

1989년 비틀에 추월당한 굴욕을 딛고
GT-R R32가 29연승으로 고질라가 됐으며,
일본 차가 슈퍼카와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장인이 손으로 만든 엔진,
뉘르부르크링을 정복한 기술,
그것이 "기술의 닛산"이 남긴 유산입니다.

"비틀에 추월당했지만, 결국 고질라가 됐다"
닛산 GT-R의 역설 - 닛산 1편

일본의 탄생 6편 완결.
다음 편: 닛산 2편 - 르노 합병·리프·아리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