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가 테슬라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오늘 이 글에서 닛산이 테슬라보다 먼저 전기차를 양산했고,
파산 직전에서 어떻게 살아났는지 완전히 정리해 드립니다.
악기 케이스 탈출극부터 전기차 선구자까지,
읽고 나면 닛산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회사인지 느끼실 겁니다.
1999년 봄, 요코하마
카를로스 곤이 닛산 본사에 들어왔습니다. 프랑스 르노가 닛산 지분 38.8%를 54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새로 임명한 CEO였는데, 닛산이 2조 1,000억 엔이라는 천문학적 부채로 파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외국인 CEO가 일본 자존심을 구할 수 있겠느냐"며 의심했고, 닛산 직원들은 불안해했습니다.
하지만 곤은 달랐는데, 취임 1년 만에 닛산을 흑자로 돌려놓았고, 5년 만에 부채를 완전히 갚았으며, 2010년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 리프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파산 직전의 회사가 전기차 역사를 쓴 것이었고, 그것이 닛산 2편의 이야기입니다.

2010 닛산 리프 1세대 화이트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 ㅡ AI 이미지
💸 1990년대, 추락하는 닛산
1980년대까지 닛산은 일본 2위 자동차 회사였는데, 토요타 다음이었고 혼다와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GT-R과 페어레이디 Z 같은 전설적인 차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일본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는데, 부동산과 주식에 과도하게 투자했던 것이 발목을 잡았고, 판매도 줄기 시작했으며, 비용 구조가 너무 비대했습니다. "901 운동"이라는 계획이 있었는데, 1990년대에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였고, 그 목표를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했으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는데, 1999년에는 2조 1,000억 엔이었고, 이건 당시 환율로 약 21조 원이었으며, 연간 이자만 갚기도 버거운 수준이었습니다. 같은 계열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닛산 자체도 언제 파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일본 정부가 나서야 할 것 같았으며, 자존심 강한 일본 기업이 외국에 팔리는 굴욕을 겪게 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다임러, GM 등 여러 회사가 닛산 인수를 검토했는데, 최종적으로 프랑스 르노가 낙점됐고, 1999년 3월 27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에 넘기는 것은 일본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는데, 자존심이 강한 일본 재계가 충격을 받았고, 언론이 "닛산이 프랑스에 팔렸다"고 보도했으며, 직원들이 동요했습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는데, 파산이냐 매각이냐의 기로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카를로스 곤이라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브라질 태생에 레바논 국적을 가진 프랑스 경영자였는데, 미쉐린과 르노에서 극적인 구조조정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고, "코스트 커터(비용 절감의 귀재)"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닛산을 살릴 마지막 카드였습니다.
⚡ 카를로스 곤의 기적
1999년 10월 곤이 닛산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닛산 르바이벌 플랜(NRP)"을 발표했는데, 3년 안에 흑자로 돌리겠다는 계획이었고, 달성하지 못하면 자신이 물러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구조조정이 시작됐는데, 전 세계에서 23,000명의 인력을 감축했고, 일본 내 5개 공장을 폐쇄했으며, 게이레츠(계열사 관계망)를 끊고 비용을 줄였습니다. 일본 기업 문화에서 이런 구조조정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종신 고용이 당연했고 관계사 거래가 관행이었으며, 곤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밀어붙였습니다. 1년 후인 2000년 닛산이 흑자로 돌아섰는데, 약속한 3년이 아니라 1년 만이었고, 일본이 놀랐으며, 곤은 영웅이 됐습니다. 2002년 2조 엔의 부채를 완전히 상환했는데, 단 3년 만이었고, 르노도 아연실색했으며, 곤은 "세계 최고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1년 닛산 CEO가 된 곤은 거침없이 달렸는데, 마치 GT-R R32가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듯이 빠르고 정확했으며, 닛산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곤 체제에서 닛산이 전기차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1997년부터 전기차 연구를 해왔고, 곤이 "전기차가 미래다"라는 확신을 갖고 투자를 늘렸으며, 그 결과가 2010년 리프였습니다. 리프는 Leading Environmentally-friendly Affordable Family car의 약자였는데, 뜻처럼 친환경적이고 합리적인 가족차를 목표로 했고, 닛산이 전기차에 거는 기대를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2010년 말 일본과 북미에서 먼저 출시됐는데, 테슬라 모델 S가 2012년에야 나왔으니 리프가 2년이나 앞선 것이었고,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라는 타이틀을 닛산이 가져갔습니다. 2014년 한국에도 들어왔는데, 전기차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고 충전 인프라도 부족했지만, 닛산이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이후 전기차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2019년까지 리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였는데, 40만 대 이상이 팔렸고, 60개국 이상에서 판매됐으며, 테슬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기차의 대명사였습니다.
🎭 2018년, 곤의 몰락
2018년 11월 닛산 내부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카를로스 곤이 수년간 자신의 보수를 과소 신고하고, 회사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닛산이 직접 일본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2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며 영웅으로 칭송받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수갑을 차게 된 것이었는데, 그의 연봉이 공시된 금액의 두 배였다는 것, 닛산의 저택들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닛산과 르노의 경영 통합을 막으려는 일본 측 음모라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곤이 보석 상태에서 전 세계를 경악시키는 탈출을 감행했는데, 대형 악기 케이스에 몸을 숨겨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로 레바논으로 도주했고, 자신이 국적을 가진 나라로 도망간 것이었으며,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는데, 일본 당국이 인터폴에 지명 수배를 의뢰했지만, 일본과 레바논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어서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는 레바논에 있고, 사건은 미해결로 남아있으며, 닛산은 그 상처를 안고 새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곤 사태는 닛산에게 혹독한 교훈이었는데, 한 사람에 너무 의존했고,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으며, 외국인 CEO에 대한 통제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닛산은 살아남았고, 곤 이후 CEO들이 회사를 추스르며 새 방향을 잡았으며, 아리야라는 전기 SUV로 르네상스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0년 5월 닛산이 철수를 발표했는데, 일본 불매운동과 판매 부진이 겹쳤고, GT-R을 포함한 모든 닛산 차를 한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됐으며, 팬들이 아쉬워했습니다.
"기술의 닛산" - 그 자존심은 살아있다
일본에 이런 말이 있는데, "품질과 내구성은 토요타, 엔진은 혼다, 기술은 닛산"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 리프, 세계 최초 가변압축비 엔진 VC-터보, GT-R의 RB26DETT 장인 제작 엔진, 이런 것들이 "기술의 닛산"이라는 별명을 뒷받침합니다. 리프가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을 달지 않아서 배터리 수명이 문제가 됐고, 테슬라에 밀려났지만, 그것도 선구자의 숙명이었습니다. 처음 전기차를 만든 사람이 가장 잘 만든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았는데, 중요한 건 먼저 시도했다는 것이고, 그 경험이 쌓여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며, 닛산의 리프가 없었다면 현대 아이오닉도, 기아 EV6도, 폭스바겐 ID.4도 조금 더 늦게 왔을 것입니다. 아리야는 그 교훈 위에서 만든 차인데,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을 달았고, 디자인도 완전히 달라졌으며, "기술의 닛산이 돌아왔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2023년 닛산과 혼다가 전기차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했는데, 2024년에는 합병까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만약 닛산-혼다가 합쳐진다면 세계 3위 자동차 그룹이 될 수 있었는데, 현대기아와 맞먹는 규모였고 전기차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2월 합병 논의가 무산됐는데,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으며, 닛산은 다시 혼자서 싸워야 했습니다. 어찌 보면 닛산다웠는데, 파산 직전에서도 살아났고, 악기 케이스 탈출극을 겪고도 버텼으며, 합병 무산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닛산의 방식이었습니다. GT-R이 비틀에 추월당하고도 고질라가 된 것처럼, 닛산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회사였습니다.

닛산 아리야 미드나잇블랙 ㅡ AI 이미지
닛산 시리즈 - 완결
2편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닛산 (1-2편): 1933년 닷손에서 시작해 닛산이 됐고, 1969년 페어레이디 Z 240Z로 스포츠카를 민주화했으며, 세기의 베스트셀러 스포츠카가 됐습니다. 1989년 비틀에 추월당한 굴욕을 딛고 GT-R R32가 29연승 고질라가 됐고, 일본 차가 슈퍼카와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1990년대 거품 붕괴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지만, 1999년 르노-곤 콤비가 살려냈고, 2010년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 리프로 미래를 열었습니다. 2018년 곤의 개인 비리 스캔들과 2019년 악기 케이스 탈출극이라는 황당한 사건을 겪고도 살아남았으며, 아리야로 전기차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습니다.
GT-R은 비틀에 추월당하고도 고질라가 됐고,
닛산은 파산 직전에서도 살아났으며,
악기 케이스 사건도 이겨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닛산의 DNA였고,
그 정신이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닛산 시리즈
2편의 여정을 마칩니다.
1999년 부채 21조 원으로 파산 직전이었지만
카를로스 곤이 1년 만에 흑자로 살려냈고,
2002년 부채를 모두 갚았습니다.
2010년 세계 최초 양산 전기차 리프를 내놓았고,
테슬라보다 2년 앞섰으며,
전기차 역사를 먼저 썼습니다.
2019년 악기 케이스 탈출극을 겪고도 살아남았고,
아리야로 전기차 르네상스를 준비하며,
고질라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닛산이다"
파산에서 선구자로 - 닛산 2편
일본의 탄생 7편 완결.
다음 편: 마쓰다 1편 - 로터리 엔진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