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억이 넘치는 이야기입니다.
각그랜저를 타던 아버지, EF쏘나타를 타던 형,
싼타페 타고 떠나던 가족 여행을 기억하시나요?
그 시절 현대자동차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ㅎㅎ
1990년 봄, 서울 강남
각그랜저 한 대가 도로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봤습니다. 사실 이건 그냥 차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1986년 출시된 각그랜저가 성공의 상징이었고, 저 차를 타면 "성공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며, 회장님 차, 장관 차로 불렸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1,800만 원에서 2,500만 원으로 당시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이었고, 그래서 더 갖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현대자동차는 그랜저로 프리미엄을 잡고, 쏘나타로 중형을 지배했으며, 1998년 EF쏘나타로 기술 독립을 선언했고, 2001년 싼타페로 SUV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황금기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1990 현대 각그랜저 블랙 ㅡ AI 이미지
👑 1986년, 각그랜저의 등장
1986년 각그랜저가 처음 나왔는데, 미쓰비시 데보네어를 기반으로 했고 현대가 국내 실정에 맞게 개조했으며, 이름을 "그랜저(Grandeur)"로 지은 것에서 포부가 보였습니다. 각진 박스형 디자인이었는데, 당시 트렌드였고 크고 당당했으며, 2.0리터부터 3.0리터 V6까지 엔진 라인업이 있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대기업 임원과 정치인, 의사, 변호사들이 샀는데, "저 차를 탄다"는 건 사회적 지위를 의미했고,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도 탔으며, 청와대 의전 차량으로도 쓰였습니다. 1990년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성공하면 꼭 각그랜저를 타고 나왔는데, 그만큼 성공의 아이콘이었고, 지금도 각그랜저를 보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1992년 뉴그랜저로 페이스리프트가 됐고, 더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바뀌었으며, "각그랜저"와 "뉴그랜저"로 구분해서 부르게 됐습니다. 각그랜저가 그랜저 역사의 시작이었고, 2024년 현재 7세대까지 이어지는 장수 모델이 되었으며, 한국 대형 세단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그랜저와 함께 쏘나타도 현대의 주력이었는데, 1985년 첫 출시 이후 계속 개선되었고, 1993년 쏘나타 2세대가 나왔을 때 국내 중형차 최초로 에어백과 ABS를 달았으며, 1994년과 1995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중형차 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큰 세그먼트였는데, 직장인들의 첫 번째 중형차였고 가족을 위한 차였으며, 쏘나타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1990년대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기아가 1998년 합병되기 전까지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현대가 한발 앞서 있었고, 그랜저와 쏘나타의 콤비가 강력했습니다.
⚙️ 1998년, EF쏘나타의 기술 독립
ㅁ1998년 3월 EF쏘나타가 나왔는데, 타이밍이 최악이었고 바로 IMF 직후였으며, 차를 살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EF쏘나타는 특별했는데, 현대가 독자 개발한 델타 2.5리터 엔진과 인공지능 자동변속기 하이벡(HIVEC)을 달았고, 이전까지 미쓰비시 엔진에 의존하던 현대가 드디어 독자 엔진을 만든 것이었으며, "기술 독립 선언"이었습니다. IMF 위기가 수그러들면서 EF쏘나타 판매가 폭발했는데, 1999년 2월부터 2000년 8월까지 19개월 연속 국내 전 차종 판매 1위를 기록했고, 중형차가 아니라 모든 차를 통틀어 1위였으며, 한국인들이 현대 기술을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선전했는데, 1999년 쏘나타 최초로 연간 수출 5만 대를 돌파했고, 2002년에는 10만 대를 넘었으며, 중국 공장에서도 생산이 시작되면서 글로벌 모델이 되었습니다. EF쏘나타는 현대차 기술 혁신의 상징이었는데, 이 차가 성공했기에 이후 품질 혁명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제네시스와 아이오닉으로 이어지는 현대의 기술 여정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EF쏘나타가 성공한 후 2000년대 내내 쏘나타가 국내 베스트셀러를 지켰는데, NF쏘나타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1위였고, YF쏘나타가 2010년에 13만 5,735대로 단일 모델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쏘나타는 명실상부 한국의 국민 중형차가 되었습니다. 1995년 출시 10년 만에 100만 대를 생산했고, 5년 후 200만 대, 또 4년 후 300만 대를 달성했으며, 쏘나타 한 모델이 350만 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쏘나타는 이제 단순한 차가 아니었는데, 한국 중산층의 삶과 함께했고 아버지 세대의 차였으며, 자녀 세대가 물려받는 차이기도 했습니다.

🚙 2001년, 싼타페와 SUV 혁명
2001년 싼타페가 출시되었을 때 시장이 달라졌는데, 기존 SUV들이 크고 투박한 오프로더였다면 싼타페는 부드럽고 세련된 크로스오버였고, "도심에서 타도 이상하지 않은 SUV"라는 개념을 한국에 처음 가져왔습니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도 생산됐는데, 현대 최초로 미국 현지 생산된 차였고 미국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핵심 차종이었으며, 출시 첫 해에 미국에서 6만 대 이상이 팔렸습니다. 싼타페는 현대의 글로벌 SUV 전략의 시작이었는데, 이전까지 세단에 집중했던 현대가 SUV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었고, 이후 투싼, 베라크루즈, 팰리세이드로 이어지는 현대 SUV 왕국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았는데, 가족들이 여행 갈 때 타기 좋았고 주말 레저 문화와 맞아떨어졌으며, 2000년대 SUV 붐에 현대가 올라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현대차의 해외 성과가 두드러졌는데, 2004년 현대차의 한국 내 매출이 57.2조 원으로 삼성 다음 2위 기업이 됐고, 2005년 세계 판매 253만 대로 글로벌 10위권에 진입했으며, 포드, GM, 도요타가 흔들리는 동안 현대는 성장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자동차 시장이 반토막 났는데,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했고 모두가 힘들었으며, 현대만 오히려 성장했습니다. 이유가 있었는데, 실직자들을 위한 "현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실직하면 차를 반납할 수 있게 해줬으며, 불안한 소비자들이 현대를 선택했습니다. 2009년 미국 J.D.파워 품질 조사에서 현대가 상위권에 진입했고, "싸구려 현대"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벗겨지기 시작했으며, 이제 진짜 도약을 위한 준비가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국민차가 된다는 것의 의미
각그랜저가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쏘나타는 국민의 차였는데, 너무 비싸지 않고 너무 싸지도 않았으며, 한국 중산층이 딱 살 수 있는 차였고, 그 위치를 수십 년간 지켰습니다. 쏘나타가 오래 사랑받은 비결은 신뢰였는데, 해마다 개선되었고 품질이 올라갔으며, "이 차를 사면 실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타던 쏘나타를 아들이 물려받고, 그 아들이 다시 새 쏘나타를 사는 패턴이 생겼는데, 한 가족이 대를 이어 같은 브랜드를 타는 것이었고, 그것이 진짜 국민차의 의미였습니다. 그랜저도 마찬가지였는데, 부모님 세대에서 그랜저는 꿈의 차였고, 자녀 세대에게는 부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차였으며, 세대를 이어주는 감성이 있었습니다. 싼타페는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주말에 가족을 태우고 바다로 산으로 달리는 이미지였고, 2000년대 한국 가족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담은 차였으며, 현대가 시대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현대자동차가 이룬 것은 단순한 판매 기록이 아니었는데, 한국인들의 삶 속에 들어온 것이었고,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성공의 상징이고 가족의 일원이 되는 문화를 만든 것이었으며, 그 중심에 현대차가 있었습니다. 각그랜저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네시스가 없었을 것이고, EF쏘나타의 기술 독립이 없었다면 아이오닉이 없었을 것이며, 싼타페의 도전이 없었다면 팰리세이드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의 끝에 오늘의 현대자동차가 있었습니다.
📈 2005-2015년, 글로벌 도약
2005년 현대자동차가 세계 판매 253만 대를 기록했고, 글로벌 10위권에 본격 진입했으며, 정몽구의 품질 혁명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제네시스 1세대가 출시되었는데, 후륜구동 대형 세단이었고 V6, V8 엔진 라인업이었으며, "현대가 BMW와 경쟁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2009년 제네시스가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했는데, 한국차 최초였고 세계가 현대를 다시 보게 된 순간이었으며, JD파워 꼴찌에서 1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2010년 쏘나타 YF가 13만 5천 대로 역대 최고 판매를 기록했는데, 유선형 플루이딕 스컬프처 디자인이 호평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중형 세단 시장을 흔들었으며, 현대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그랜저 HG가 10만 7천 대가 팔리며 국내 판매 2위에 올랐는데, 대형 세단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전례가 없었고, 한국인의 그랜저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줬으며, "국민 대형차"의 위상을 확인했습니다.
2013년 제네시스 2세대가 나왔는데, 더 세련된 디자인이었고 기술도 발전했으며, 미국에서 렉서스와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연간 800만 대를 판매하면서 세계 5위 그룹으로 올라섰는데, 기아 인수 17년 만이었고 2008년 전 세계 3위였던 GM이 금융위기로 무너진 사이 현대기아가 치고 올라간 것이었으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쾌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현대차는 단순히 차를 많이 판 게 아니었는데, 품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디자인 경쟁력이 생겼으며, 프리미엄 시장 진입의 발판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음 편에서 그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2001 현대 싼타페 1세대 ㅡ AI 이미지
1986년 각그랜저가 성공의 상징이 되었고,
1998년 EF쏘나타가 기술 독립을 선언했으며,
1999년부터 19개월 연속 전 차종 판매 1위였습니다.
2001년 싼타페로 SUV 시장을 열었고,
2009년 제네시스로 세계 올해의 차를 받았으며,
2015년 세계 5위 그룹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랜저·쏘나타·싼타페가 한국인의 삶을 채웠고,
세대를 이어주는 브랜드가 되었으며,
다음 편 대단원이 기다립니다.
"이봐, 해봤어?"
정주영의 꿈이 꽃피던 시절 - 현대자동차 2편
한국의 탄생 11편 완결.
다음 편: 현대 3편 - 제네시스, 아이오닉, 그리고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