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합병되어 무너질 것 같았던 기아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디자인 브랜드로 거듭났는지,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2006년 10월, 서울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자동차 디자인 총괄로 취임했습니다. 사실 이게 기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폭스바겐과 아우디에서 골프와 TT를 디자인한 세계적인 거장이었고, 당시 기아차는 "값싼 한국차"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누가 봐도 기아가 슈라이어를 잡은 건 파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슈라이어가 기아에 와서 한 첫 마디가 유명했는데, "기아차는 마치 하얀 도화지 같았다, 그래서 짧은 기간 안에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얀 도화지 위에 타이거 노즈 그릴을 그리기 시작했고, 2010년 K5를 통해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기아는 영원히 달라졌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2010 기아 K5 실버 디자인 혁명 ㅡ AI 이미지
🔧 1999-2006년, 합병 후 안정기
1999년 현대자동차에 합병된 기아는 처음에 정체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현대의 하위 브랜드가 될 것 같았고, 경쟁력을 잃을 것 같았으며, 직원들의 사기도 낮았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기아를 독립 브랜드로 운영하기로 했는데, 플랫폼을 공유하되 디자인과 성격은 다르게 유지하기로 했으며, 기아만의 정체성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2000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출범했고, 기아자동차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를 잡았으며, 소하리와 화성, 광주 공장이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쏘렌토가 출시되었는데, 기아의 새로운 주력 SUV였고 현대 싼타페와 플랫폼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디자인과 성격을 가졌으며, 미국 시장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4년 스포티지도 2세대로 부활했는데, 이전 세대보다 훨씬 세련되었고 소형 SUV 시장에서 선전했으며, 기아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디자인에서 현대에 밀렸고, 독자적인 이미지가 약했으며,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2005년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이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기아차의 부활을 위해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영입하기로 했고, 유럽을 뒤지다가 피터 슈라이어를 찾았으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슈라이어는 폭스바겐 골프 4세대와 아우디 TT를 디자인한 사람이었는데, 세계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장이었고, 한국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지만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2006년 10월 슈라이어가 기아 디자인 총괄로 취임했고, 그가 처음 한 일은 기아의 디자인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었으며, 타이거 노즈 그릴이라는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앞 그릴을 호랑이 코처럼 강하고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기아의 모든 차에 통일성을 주는 아이덴티티였고, 멀리서도 기아인 걸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2010년, K5의 충격
2010년 4월 부산 국제 모터쇼에서 K5가 공개되었을 때 모두가 놀랐는데, 이게 정말 기아차인지 믿기지 않았고 유럽 프리미엄 세단과 비교해도 디자인이 뒤처지지 않았으며, 언론이 "기아의 부활"이라고 외쳤습니다. K5는 중형 세단이었는데, 로체의 후속이었고 현대 쏘나타와 플랫폼을 공유했지만 디자인은 완전히 달랐으며, 타이거 노즈 그릴이 처음으로 완성된 형태로 적용되었습니다. 타이거 노즈는 그릴이 보닛 위까지 이어지는 형태였는데, 강하고 독특했으며, 기존 한국차에서는 볼 수 없던 디자인이었습니다.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연달아 수상했는데, iF 디자인 어워드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한국차가 디자인으로 세계 상을 받는 건 처음이었으며, 기아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판매도 폭발했는데, 2010년 출시 첫 해에 국내에서 현대 쏘나타의 판매를 위협할 정도였고, 미국에서도 "Kia Optima"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기아가 더 이상 값싼 차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K5의 성공을 발판으로 기아는 K 시리즈를 확장했는데, 2011년 준대형 세단 K7이 나왔고, 2012년 대형 플래그십 K9까지 이어졌으며, K 시리즈는 기아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쏘울도 2011년 1세대가 나왔는데, 독특한 박스카 디자인이 젊은 층을 사로잡았고, 미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으며, 기아 브랜드를 젊고 개성 있는 이미지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2013년 스팅어 컨셉트가 공개되었을 때 충격이었는데, 기아가 스포츠 그란 투리스모를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현실화되면 BMW와 벤츠에 도전하는 것이었으며, 사람들이 과연 될까 싶었습니다. 2017년 스팅어가 실제로 출시되었는데, 3.3리터 트윈터보 V6 370마력에 0-100km/h 5.1초였고, BMW 4시리즈 그란 쿠페와 직접 비교 시승 기사가 쏟아졌으며, "기아가 이런 차를 만들 수 있다고?"라는 놀라움이 이어졌습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바꾼 것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에 온 것은 단순한 디자이너 영입이 아니었는데, 회사 전체의 철학을 바꾸는 일이었고, "기아는 디자인으로 승부한다"는 선언이었으며, 모든 의사 결정에서 디자인이 우선순위가 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폭스바겐-아우디에서 그는 경영진이 디자인을 함부로 바꾸는 것에 불만이 많았는데, 기아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고, 디자인을 타협 없이 밀어붙일 수 있었으며, 그 결과가 K5와 스팅어였습니다. 타이거 노즈 그릴 이전과 이후로 기아의 역사가 나뉘는데, 이전의 기아는 현대의 저렴한 버전이었고, 이후의 기아는 독자적인 디자인 브랜드가 되었으며, 슈라이어 한 명이 그 경계선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슈라이어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는데, 한국 대기업에서 외국인이 사장이 된 건 매우 드문 일이었고, 그만큼 기아에서의 성과가 인정받은 것이었으며, 한국 자동차 디자인 역사의 새로운 장이었습니다.
기아의 디자인 철학은 슈라이어 이후 계속 진화했는데, 2021년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라는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발표했고, 대담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으며, EV6가 그 첫 번째 결실이었습니다. 동시에 회사 로고도 바꿨는데, 기존의 타원 안에 KIA 글자 대신 필기체 같은 새 로고를 선보였고, 2021년 1월 공개 당시 "KIA인지 KN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으며, 그만큼 기아가 기존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 2021년, EV6와 세계 정복
2021년 3월 EV6가 공개되었는데, 기아의 첫 번째 전용 전기차였고 현대차그룹의 E-GMP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으며, 디자인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공기 역학적인 유선형 쿠페 스타일에 넓은 실내, 77.4kWh 배터리로 최대 475km 주행, 800V 고속 충전으로 18분 만에 80% 충전이 가능했고, 0-100km/h 3.5초의 GT 버전은 포르쉐 타이칸과 비교 기사가 나왔습니다. 2022년 EV6는 세계 올해의 차(World Car of the Year)를 수상했는데, 한국차가 이 상을 받은 건 2009년 현대 제네시스 이후 두 번째였지만, 전기차 부문에서는 처음이었으며, 세계가 기아를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EV6가 인기를 끌었는데, 테슬라 모델 Y와 비교 시승 기사가 나왔고, 디자인과 충전 속도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기아가 전기차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2023년에는 EV9 대형 SUV도 나왔는데, 7인승 대형 전기 SUV였고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를 모두 수상했으며, 기아 전기차 라인업이 완성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현재 기아는 연간 320만 대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데,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 브랜드로 세계 3위 자동차 그룹의 한 축이며, 1998년 합병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유럽, 인도 등 전 세계에 공장을 가지고 있고, 2010년대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연간 30만 대를 생산하며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공장은 유럽 거점이고, 인도 공장도 확장 중이며, 기아는 진짜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되었습니다. 1944년 김철호가 "자전거가 완성되면 자동차, 자동차가 완성되면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80년 후 기아는 자동차를 넘어 전기차와 PBV(목적 기반 차량)로 미래를 열고 있으며, 창업자의 꿈이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2021 기아 EV6 매트그레이 워터프런트 ㅡ AI 이미지
기아자동차 시리즈 - 완결
3편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기아자동차 (1-2편): 1944년 12월 11일 김철호가 경성정공을 세웠고,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삼륜차, 사륜차로 단계적으로 발전했으며, 1974년 브리사로 89.5% 국산화를 달성하며 "기술의 기아"가 되었습니다. 1980년 정부의 합리화 조치로 승용차를 빼앗겼지만 봉고로 버텼고, 1987년 프라이드로 화려하게 복귀했으며, 1993년 스포티지로 SUV에 도전했습니다. 1997년 부도 위기로 1998년 현대에 합병되었지만, 2006년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면서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K5로 디자인 혁명을 일으켰고, 2017년 스팅어로 스포츠카에 도전했으며, 2021년 EV6로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했습니다. 1944년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서 80년 후 세계 3위 자동차 그룹의 핵심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起亞의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자전거에서 시작해서 전기차까지,
합병되어도 굴하지 않았고,
디자인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EV6가 세계 올해의 차가 된 날,
1944년 김철호의 꿈이
80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기아자동차 시리즈
2편의 여정을 마칩니다.
1999년 현대에 합병되었지만 기아는 살아남았고,
2006년 피터 슈라이어가 타이거 노즈를 그렸으며,
2010년 K5로 세계가 기아를 다시 봤습니다.
2017년 스팅어로 스포츠카에 도전했고,
2021년 EV6로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했으며,
연간 320만 대로 세계를 달리고 있습니다.
1944년 경성정공의 작은 꿈이,
80년 후 세계 3위 그룹의 핵심이 되었고,
起亞의 정신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다"
起亞의 완성 - 기아자동차 2편
한국의 탄생 9편 완결.
다음 편: 현대자동차 1편 - 포니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