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슴이 뛰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흙먼지 날리는 랠리 무대에서 탄생한 전설,
미쓰비시가 어떻게 세계를 달렸는지
일본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1992년 가을, 일본
미쓰비시가 랜서 에볼루션 1세대를 출시했습니다. 사실 이건 그냥 스포츠카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WRC 세계 랠리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한 호몰로게이션 차량이었고, 경기에 나가려면 똑같은 차를 2,500대 이상 일반에 팔아야 했으며, 미쓰비시가 랠리 우승을 위해 만든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2,500대 한정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팬들이 미친 듯이 사갔고, 에볼루션의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4년간 10세대를 이어온 랜서 에볼루션은 일본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스포츠카 중 하나였는데, WRC에서 수많은 우승을 거뒀고, 스바루 임프레자와의 라이벌 관계는 자동차 역사에 남는 명승부였으며, 지금도 "란에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오늘은 미쓰비시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6세대 레드 ㅡ AI 이미지
🏭 1870년, 미쓰비시의 뿌리
미쓰비시는 자동차 회사로 시작하지 않았는데, 1870년 이와사키 야타로가 해운 회사로 설립했고, 조선, 철강, 금융까지 사업을 넓혀 일본 최대 재벌 중 하나가 되었으며, 자동차는 훨씬 나중 이야기입니다. 1917년 미쓰비시 조선소가 일본 최초의 양산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이탈리아 피아트를 참고한 "미쓰비시 모델 A"였고, 22대를 만들었으며, 자동차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군용 차량과 항공기를 만들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제로 전투기로 유명했고, 전쟁이 끝난 후 자동차 사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미쓰비시 중공업이 승용차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코르트, 콜트 등의 소형차를 내놓았고, 기술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독립해서 미쓰비시자동차공업이 설립되었는데, 독립된 자동차 회사로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었고, 1973년 랜서 1세대가 나오면서 미쓰비시 자동차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미쓰비시가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는데, 현대자동차가 미쓰비시와 기술 제휴를 맺었고, 포니의 엔진이 미쓰비시 것이었으며, 이후 수십 년간 현대는 미쓰비시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갤로퍼는 미쓰비시 파제로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현대 엔진 여러 개가 미쓰비시 기술에서 비롯되었으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에 미쓰비시가 숨어있는 스승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쓰비시는 "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이미지를 쌓았는데, 가솔린 직접분사 엔진 기술을 유럽의 PSA 그룹, 볼보, 현대자동차에 제공했고, 일본 내에서 닛산을 위협하는 3위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으며, 파제로와 랜서 에볼루션이 그 정점이었습니다.
🏔️ 1982년, 파제로의 탄생
1982년 파제로가 출시되었는데, 산고양이(스라소니)를 의미하는 이름이었고, 강하고 야성적인 이미지를 담았으며, 진짜 오프로드를 위한 차였습니다. 출시 직후부터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전했는데, 1983년 첫 참전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해를 거듭하면서 다카르 랠리의 절대 강자가 되었으며, 1985년부터 연속으로 우승하면서 신화가 되었습니다. 파리-다카르 랠리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오프로드 레이스였는데, 아프리카 사막 1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었고, 차와 기계가 버티기 힘든 환경이었으며, 거기서 우승한다는 건 진짜 튼튼한 차라는 증명이었습니다. 파제로가 다카르를 지배하면서 "파제로 = 최강 SUV"라는 공식이 생겼는데, 전 세계에서 팔리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현대정공이 파제로 1세대를 갤로퍼라는 이름으로 라이선스 생산했으며, 1990년대 한국 SUV 붐에 파제로 기술이 뿌리에 있었습니다. 파제로는 4세대까지 이어졌고, 2021년 단종될 때까지 40년간 생산되었으며, 다카르 랠리 통산 12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0년대 미쓰비시가 전성기를 맞았는데, 파제로, 샤리오, RVR 등 RV 차량이 히트하면서 "RV의 미쓰비시"라는 별명까지 생겼고, 일본 내에서 혼다와 3위 자리를 다투는 강자가 되었으며,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미쓰비시 MIVEC 엔진은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이었는데, 혼다 VTEC와 함께 일본 엔진 기술의 정점이었고, 이 기술이 여러 나라 자동차에 퍼져나갔으며, "기술의 미쓰비시"라는 평가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 1992년, 랜서 에볼루션 신화
1992년 랜서 에볼루션이 탄생했는데, 배경이 있었고 미쓰비시가 WRC에서 우승하기 위해 만든 차였으며, 랜서라는 평범한 세단 기반에 4WD와 터보 엔진을 얹어 괴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4G63 2.0리터 터보 엔진은 전설이 되었는데, 처음 250마력에서 시작해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강해졌고, 개조하면 500마력, 700마력도 가능했으며, 신뢰성도 뛰어나서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최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WRC에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토미 마키넨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년 연속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했고, 미쓰비시 랠리아트 팀이 무적에 가까웠으며, 에볼루션은 랠리 머신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스바루 임프레자 WRX와의 라이벌 관계가 전설적이었는데, 에볼루션과 임프레자가 랠리에서 매번 맞붙었고, 국내 도로에서도 두 차 오너들이 경쟁했으며, 일본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라이벌리 중 하나였습니다. 에볼루션 6세대는 특히 명차로 꼽히는데, 토미 마키넨 에디션이 따로 나올 정도였고, 공도와 서킷 모두에서 극한의 성능을 발휘했으며, 세계 각지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지금도 구하려고 합니다.
에볼루션의 특징은 4WD 시스템이었는데, AYC(Active Yaw Control)라는 독자 기술로 코너에서 안쪽과 바깥쪽 바퀴에 토크를 다르게 배분했고, 이것이 에볼루션을 코너에서 무섭게 만든 비결이었으며, 지금도 많은 스포츠카에 비슷한 기술이 쓰이고 있습니다. 에볼루션은 가격도 합리적이었는데, 수백만 원짜리 슈퍼카와 비슷한 성능을 훨씬 저렴하게 낼 수 있었고, 그래서 "가난한 자의 슈퍼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실력 있는 드라이버가 탄 에볼루션이 페라리를 추월하는 영상이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습니다. 2016년 에볼루션 10세대 파이널 에디션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는데, 1,000대 한정이었고 순식간에 팔렸으며, "에보의 죽음"이라며 전 세계 팬들이 애도했습니다.
미쓰비시의 명암: 기술은 있었지만
미쓰비시는 기술이 뛰어난 회사였는데, 파제로로 다카르를 정복했고 에볼루션으로 WRC를 지배했으며, 가솔린 직접분사, MIVEC 가변 밸브 기술을 세계에 먼저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치명적인 스캔들이 터졌는데, 2000년 과거 30년간 리콜 결함 정보를 은폐해온 사실이 드러났고, 100만 대 이상의 차량이 해당되었으며, 소비자 안전을 무시한 조직적 은폐였습니다. 회사 전체가 휘청거렸는데, 판매가 급감했고 이미지가 추락했으며, 다임러-크라이슬러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2004년에는 트럭 결함 은폐도 추가로 드러났는데, 실제로 사망 사고가 있었고 경영진이 체포되었으며, 미쓰비시 브랜드 신뢰도가 바닥을 쳤습니다. 결국 2016년 닛산자동차가 지분 34%를 인수하면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일원이 되었고, 독립 자동차 회사로서의 미쓰비시는 사실상 끝났으며, 기술은 뛰어났지만 기업 윤리가 발목을 잡은 뼈아픈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미쓰비시가 남긴 것은 컸는데, 파제로의 다카르 우승은 SUV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고, 랜서 에볼루션은 일본 자동차 문화의 아이콘으로 남았으며, 아웃랜더 PHEV는 세계 최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로 미쓰비시 기술력을 다시 증명했습니다. 2013년 출시된 아웃랜더 PHEV는 세계 최초 대량 생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였는데, 전기와 가솔린을 함께 쓰는 SUV였고, 유럽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으며, 미쓰비시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비록 닛산 산하에 들어갔지만 미쓰비시 브랜드는 유지되고 있고, 아시아와 유럽에서 계속 팔리고 있으며, 에볼루션을 기억하는 팬들이 있는 한 미쓰비시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2013년 이후, 전기차의 도전
미쓰비시가 전기차 분야에서 선구자였는데, 2009년 아이미브(i-MiEV)를 출시했고, 세계 최초의 양산 전기 경차였으며, 테슬라보다 먼저 전기차를 대중에게 팔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미브는 작고 귀여웠는데, 항속거리가 짧았고 가격도 비쌌지만 전기차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아웃랜더 PHEV가 나왔는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였고 전기로만 60km를 갈 수 있었으며, 유럽에서 몇 년간 베스트셀러 PHEV가 되었습니다. 2016년 닛산 산하에 들어간 이후 미쓰비시의 전기차 전략이 닛산·르노와 공유되기 시작했는데, 플랫폼을 공유하고 기술을 나눴으며, 혼자였을 때보다 오히려 자원이 늘었습니다. 2024년 현재 미쓰비시는 아웃랜더, 이클립스 크로스, 아이미브의 후속 모델들로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 버티고 있는데, 예전의 영광은 아니지만 미쓰비시만의 개성 있는 SUV 라인업으로 틈새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랜서 에볼루션의 부활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은데, 닛산 GT-R처럼 전기 에볼루션이 나올 수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으며, 언젠가 그날이 오기를 전 세계 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와 한국의 인연도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이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을 배워 이제는 거꾸로 미쓰비시보다 더 크고 강한 회사가 되었고, 제자가 스승을 넘어선 것이었으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파제로에서 배운 기술로 갤로퍼를 만들고, 갤로퍼에서 배운 경험으로 싼타페를 만들었으며, 싼타페의 성공이 팰리세이드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미쓰비시가 없었다면 오늘의 현대 SUV도 없었을 것이고, 그 점에서 미쓰비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숨은 스승이었으며, 고마운 라이벌이었습니다.

미쓰비시 파제로 2세대 화이트 ㅡ AI 이미지
1970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독립했고,
1982년 파제로로 다카르 랠리를 정복했으며,
1992년 랜서 에볼루션으로 WRC를 지배했습니다.
토미 마키넨의 4년 연속 챔피언,
스바루와의 영원한 라이벌,
4G63 엔진의 전설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리콜 은폐 스캔들로 추락했지만,
아웃랜더 PHEV로 다시 일어섰으며,
2016년 닛산 산하에서 새 길을 찾고 있습니다.
"랜서 에볼루션은 영원하다"
기술과 명암의 역사 - 미쓰비시
일본의 탄생 1편 완결.
다음 편: 스바루 - 수평대향 엔진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