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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보

메트로 시리즈 KR (55부) - 현대 엑셀(EXELL)

by Zzeus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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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 시대를 연 수출 효자, 한국차의 미국 진출 신화

안녕하세요~여러분!^^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요즘, 차 한 대가 가족의 일상이 되었던 그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 현대 엑셀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98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며 '마이카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중심에 현대 엑셀이 있었죠. 국산차 최초로 전륜구동을 채택했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첫 해에만 무려 16만 8천 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격은 4,995달러로, 신차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가격 수준이었죠.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깔끔한 외관과 실용적인 구성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진짜 국민차'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엑셀. 그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현대자동차는 1967년 설립된 대한민국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입니다. 1975년 포니로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으며, 1980년대 들어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엑셀은 포니의 성공을 잇는 전략 모델로,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동급 경쟁 모델로는 기아 프라이드, 대우 르망 등이 있었으며, 미국 시장에서는 혼다 시빅, 토요타 코롤라와 경쟁했습니다.

미국 진출 첫 해 168,882대 판매!

1986년 현대 엑셀은 미국 시장 진출 첫 해에 168,882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브랜드 첫 해 판매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놀라운 성과입니다. 포춘지는 엑셀을 '올해의 베스트 제품 10'에 선정했으며, 당시 미국인들은 "일본차보다 저렴한데 품질도 괜찮다"며 열광했습니다.

단 31개 주에서만 판매했음에도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습니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1986년까지 누적 생산 100만 대를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마이카 시대의 문을 열다

1985년 2월 8일, 현대 엑셀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정확히는 '포니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기존 포니의 명성을 이어받되, '뛰어난(Excellent)'이라는 의미를 담아 엑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5개월 후인 7월, 세단형 모델인 '프레스토'가 추가로 출시되었습니다.

엑셀이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였다는 점입니다. 그 전까지 한국 자동차들은 모두 후륜구동이었죠. 전륜구동은 실내 공간 확보에 유리하고 눈길이나 빗길에서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엔진은 미쓰비시의 1.3리터(66마력)1.5리터(68-71마력) 두 가지가 있었고, 플랫폼은 미쓰비시 미라지 2세대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디자인은 세계적인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습니다. 그는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등 수많은 명차를 디자인한 인물이죠. 엑셀은 깔끔하고 박스형의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피아트 우노나 세아트 이비자와 비슷한 느낌을 풍겼습니다. 블랙 플라스틱 그릴에 'HYUNDAI' 레터링을 새긴 전면부는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인상을 주었죠.

가격은 1.3 FX가 339만원, 최상급인 1.5 SUPER가 449만원 수준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소형차로는 고급 사양이던 타코미터, 오토 리버스 카세트, 디지털 시계를 기본으로 장착했고, 에어컨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과 맞물려 엑셀과 프레스토는 빌라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마이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본넷이 뒤쪽에서 앞으로 열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차들과 반대였죠. 또한 계기판에는 도어가 열린 상태를 위치별로 알려주는 경고등도 있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꽤 참신한 기능이었습니다.

미국 시장의 충격, 한국차의 첫 승리

1986년 1월, 현대자동차는 대담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미국 시장 진출이었죠. 당시 미국은 일본 자동차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산 자동차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Hyundai'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몰라 '헌데이'라고 부르거나, 혼다(Honda)의 짝퉁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엑셀에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4,995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이었죠. 당시 혼다 시빅이 7,000달러 이상이었으니, 약 30% 저렴했습니다. 유고(Yugo)라는 동유럽산 초저가 자동차보다는 500달러 비쌌지만, 품질과 디자인에서 훨씬 나았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는 "엑셀은 6~7년 전 일본차 수준"이라고 평가했는데, 이는 칭찬이었습니다. 신차가 중고 일본차만큼 좋다는 의미였으니까요.

결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첫 해에만 168,882대를 판매했고, 이는 미국 진출 첫 해 수입차 판매 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포춘지는 엑셀을 '1986년 베스트 제품 10'에 선정했고,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으로부터 우수한 안전 성능 인증도 받았습니다. 터미네이터 2, 보이즈 앤 후드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배경 차량으로 등장할 만큼 미국 거리에서 흔한 차가 되었죠.

특히 저소득층과 처음 차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신차를 살 여유가 없던 사람들이 중고차 가격으로 새 차를 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미쓰비시도 엑셀의 성공을 보고 '프리시스(Precis)'라는 이름으로 리뱃지해서 팔 정도였습니다. 일본 쿼터 제한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엑셀이 시장성이 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품질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죠. 잦은 고장, 빠른 녹 발생, 열악한 사후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현대차는 황급히 무상 보증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지만, 한번 떨어진 이미지를 회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당시의 품질 악명은 현대차를 수십 년간 괴롭혔고, 지금의 현대차가 품질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술적 혁신과 한계

1989년 4월, 현대는 2세대 엑셀을 출시했습니다. 이번에는 프레스토도 '엑셀 세단'으로 이름을 통일했죠. 디자인은 1988년 출시된 Y2 쏘나타를 닮아서 '리틀 쏘나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특히 뒷부분의 몬드리안 추상화 같은 테일램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엔진이었습니다. 기존의 카뷰레터 방식 외에 MPI(Multi Point Injection) 연료 다중 분사 방식을 국산 소형차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이 엔진은 1.5리터에 97마력을 냈고, 최대 토크는 14.3kg.m였습니다. 당시 쏘나타나 그랜저 같은 고급 차에나 들어가던 기술을 소형차에 적용한 것이죠. 컴퓨터가 각 실린더마다 정밀하게 연료를 분사해 연비와 출력을 동시에 높였습니다.

최고급 트림인 TRX(Top Range eXcel)에는 각종 편의 사양이 대거 추가되었습니다. 알루미늄 휠, ETR 디지털 튜너 카오디오, 선루프 등이 장착되었죠. 1991년 5월에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엑셀'이 나왔고, 이때부터 'HD' 엠블럼 대신 현재의 'H' 로고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7월에는 프레스토를 포함한 누적 생산이 200만 대를 돌파했습니다. 1988년 100만 대 돌파 후 단 3년 만의 일이었죠. 9월에는 3도어 해치백의 뒷좌석을 없애고 화물칸을 확장한 밴 모델도 출시되어 소상공인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기아 프라이드, 대우 르망 등이 개선된 모델을 내놓았고, 엑셀은 점차 구형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원래 1990년 엘란트라로 대체될 예정이었지만, 현대차는 엑셀을 저가형 모델로 계속 판매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 4월 엑센트가 출시되면서 같은 해 7월 단종되었습니다. 1985년 2월부터 1994년 7월까지, 꼭 9년 5개월의 역사였습니다.

현대 엑셀,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 대한민국 최초 전륜구동 승용차 - 실내 공간과 주행 안정성을 동시에 잡았습니다

✅ 미국 진출 첫 해 16만대 판매 - 수입차 브랜드 첫 해 판매 최고 기록 (현재까지 유지)

✅ 마이카 시대의 상징 - 1980년대 중후반 빌라촌마다 한 대씩 있던 국민차

✅ 조르제토 주지아로 디자인 - 세계적 거장이 만든 실용적이고 깔끔한 스타일

✅ 국산 소형차 최초 MPI 엔진 - 2세대부터 첨단 연료분사 기술 적용

✅ 파격적 가격 경쟁력 - 미국에서 4,995달러, 일본차보다 30% 저렴

현대 엑셀은 완벽한 차는 아니었습니다. 초기 품질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그 여파는 오랫동안 현대차를 괴롭혔죠. 하지만 엑셀이 없었다면 지금의 현대자동차도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첫발을 내딛게 해준 개척자였고, 한국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증명한 증인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 처음으로 내 차를 갖게 된 수많은 가정의 기쁨과 설렘. 그 중심에 현대 엑셀이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엑셀은 '마이카 시대'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역사적 모델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초기의 실수에서 배워 지금은 세계 5위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 그 첫 걸음에 엑셀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본 글의 정보는 위키백과 한국어/영어판, 현대자동차 공식 홈페이지, Car and Driver, AutoTribune, Old Motors, Curbside Classic, Autopolis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바쁜 시간 내서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다음에도 더 흥미진진한 자동차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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