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4-3화: Ferrari 250 LM - 32대의 배신, FIA를 거부한 미드십 혁명
안녕하세요, 지난 편에서 우리는 Shelby Cobra Daytona Coupe가 1965년 FIA GT 챔피언십을 차지하며 페라리의 왕좌를 무너뜨린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페라리는 그냥 당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1963년, 엔초 페라리는 혁명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프론트 엔진을 버리고 미드십 레이아웃을 채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차가 바로 Ferrari 250 LM입니다. "LM"은 Le Mans(르망)을 의미했고, 이 차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1965년 르망 24시간 우승. 하지만 FIA는 이 차를 배신했고, 엔초는 분노했습니다. 오늘은 32대만 태어난 미드십 혁명의 이야기입니다.
🏁 경쟁자들 - 1963년, GT의 혼돈

1963년, GT 레이싱은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Ferrari 250 GTO는 2년 연속 FIA GT 챔피언십을 차지했지만, 경쟁자들이 빠르게 따라잡고 있었습니다. Shelby Cobra는 직선 구간에서 페라리를 압도했고, Jaguar E-Type은 영국 신사의 우아함으로 GT 레이스를 장악했습니다. Aston Martin DB4 GT Zagato는 경량화로 코너링에서 페라리를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Porsche 904 GTS가 등장하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250 GTO는 완벽한 차였지만, 프론트 엔진 레이아웃의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무거운 V12 엔진이 앞쪽에 위치하면서 무게 배분이 55:45(앞:뒤)였고, 이것은 고속 코너링에서 언더스티어를 유발했습니다. 엔초는 엔지니어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미드십은 어떤가?" 엔지니어들은 놀랐습니다. 미드십 레이아웃은 당시 F1과 프로토타입 레이싱카에서만 사용되었고, GT카에는 적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엔초는 확신했습니다. "250 GTO의 후계자는 미드십이어야 한다." 1963년 초, 페라리는 비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명은 "Tipo 250 LM".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250 GTO의 V12 엔진을 차체 중앙에 배치하고, 무게 배분을 50:50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FIA GT 카테고리 인증을 받아, 1964년부터 GT 레이스를 지배하는 것. 하지만 이 계획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습니다.
🚨 충격적인 사실 공개!
Ferrari 250 LM은 공식적으로 32대만 생산되었지만, 정확한 섀시 넘버는 논란이 있습니다. 초기 생산분 일부는 3.3L V12가 아닌 3.0L V12을 탑재했으며, 후기 생산분 중 일부는 4.0L V12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FIA는 250 LM을 GT 카테고리로 인정하지 않고 프로토타입으로 강등시켰으며, 이것은 엔초 페라리가 평생 FIA를 미워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2015년 경매에서 한 대가 1,760만 달러(약 196억 원)에 낙찰되어 당시 페라리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 차별화 - 엔초의 결단, 미드십 혁명
1963년 여름, 마라넬로 공장.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V12 엔진을 차체 중앙에 배치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난관이었습니다. 엔진이 뒤로 이동하면서 드라이버 포지션, 연료 탱크 위치, 냉각 시스템 배치 모든 것이 재설계되어야 했습니다. 특히 문제는 실내 공간이었습니다. V12 엔진이 운전석 바로 뒤에 위치하면서, 실내는 극도로 좁아졌습니다.
페라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Flying Buttress(플라잉 버트리스). 이것은 루프에서 리어 펜더로 이어지는 날렵한 필러 디자인으로, 공기역학적 효율을 높이면서 동시에 엔진 냉각 공기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Pininfarina와 Scaglietti가 협업하여 디자인한 이 차체는 250 GTO보다 더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우아했습니다. 프론트는 낮고 뾰족했고, 리어는 캄 테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엔진은 250 GTO의 3.0L V12(tipo 168)을 베이스로 했지만, 배기량을 3.3L로 확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미드십 레이아웃으로 무게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250 LM의 공차중량은 약 880kg으로, 250 GTO(820kg)보다 60kg 무거웠습니다. 추가 파워가 필요했고, 페라리는 보어를 확대하여 배기량을 늘렸습니다. 결과는 320마력. 250 GTO(300마력)보다 20마력 높았습니다.
1963년 11월, 파리 모터쇼. 페라리는 250 LM을 공개했습니다. 로소 코르사 레드 차체, 와이어 스포크 휠, 그리고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 관중들은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엔초 페라리는 걱정했습니다. "FIA가 이것을 GT로 인정해줄까?" FIA 규정에 따르면, GT 카테고리 인증을 받으려면 최소 100대 이상 생산이 필요했습니다. 엔초는 FIA에 특별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250 LM은 250 GTO의 파생형입니다." 하지만 FIA의 답변은 냉혹했습니다. "거부합니다."
🔧 기술 우위 - 3.3L V12 + 완벽한 무게 배분
FIA의 거부는 엔초 페라리에게 치욕이었습니다. 250 LM은 GT로 인정받지 못하고 프로토타입 카테고리로 강등되었습니다. 이것은 치명적이었습니다. 프로토타입 카테고리는 Ford GT40, Porsche 906, Ferrari 330 P 같은 순수 레이싱카들이 경쟁하는 무대였고, 250 LM은 이들과 직접 겨뤄야 했습니다. 엔초는 분노했습니다. "FIA는 우리를 배신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50 LM의 진짜 강점은 완벽한 무게 배분이었습니다. V12 엔진이 차체 중앙에 위치하면서, 무게 배분은 정확히 50:50이었습니다. 이것은 코너링에서 엄청난 장점이었습니다. 250 GTO는 고속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발생했지만, 250 LM은 중립적인 핸들링을 보여줬습니다. 드라이버들은 이 차를 극찬했습니다. "이것은 F1처럼 돈다."
서스펜션은 프론트와 리어 모두 더블 위시본 독립식이었고, 댐퍼는 Koni 쇼크업소버를 사용했습니다. 타이어는 Dunlop 레이싱 슬릭이었고, 휠은 Borrani 와이어 스포크 휠이었습니다. 브레이크는 Girling 디스크 브레이크로, 당시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이었고, 기어비는 르망 뮈잔 직선 구간을 위해 최적화되었습니다. 최고속도는 시속 300km. 250 GTO(280km/h)보다 20km 빨랐습니다.
1964년 시즌, 250 LM은 프로토타입 카테고리에서 고전했습니다. Ford GT40의 7.0L V8 파워를 당해낼 수 없었고, Ferrari 330 P의 4.0L V12에도 밀렸습니다. 하지만 250 LM은 내구성에서 우위를 보였습니다. 24시간 레이스에서 Ford는 자주 리타이어했지만, 250 LM은 꾸준히 완주했습니다. 엔초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속도로 이길 수 없다면, 끈기로 이기겠다."
💡 잠깐!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꿀팁
Ferrari 250 LM은 32대만 생산되었지만, 이 중 약 70%가 NART(North American Racing Team) 사양으로 제작되었습니다. NART는 미국 페라리 딜러 Luigi Chinetti(루이지 키네티)가 운영하는 레이싱 팀으로, 250 LM의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NART 사양은 블루/화이트 레이싱 스트라이프와 특별 내장재로 구분되며, 컬렉터블 가치가 일반 사양보다 30% 이상 높습니다. 특히 1965년 르망 우승차(섀시 5893)는 페라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50 LM으로 평가받으며, 추정가는 300억 원 이상입니다.
🇮🇹 페라리
250 LM
32대 미드십
🏆 V12
3.3L 자연흡기
320마력
⚡ 무게배분
완벽한
50:50
💰 가치
현재 가격
약 196억 원
🚫 시장 반응 - FIA의 배신, 프로토타입 강등
1964년, FIA의 GT 카테고리 거부는 페라리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FIA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 사건이 "1966년 Ford vs Ferrari 전쟁"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합니다. 엔초는 FIA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고, 프로토타입 카테고리에서 Ford를 직접 격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250 LM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프로토타입으로 강등된 250 LM은 GT 레이스에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프라이빗 팀들은 250 LM을 GT 카테고리로 등록하려 했지만, FIA는 거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250 LM은 프로토타입 카테고리에서만 경쟁해야 했고, 이것은 불리했습니다. Ford GT40은 7.0L V8으로 485마력을 발휘했고, Ferrari 330 P2는 4.0L V12으로 370마력을 냈습니다. 250 LM의 3.3L V12 320마력은 파워에서 압도적으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250 LM에는 한 가지 무기가 있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내구성". 1964년 르망 24시간에서 Ford GT40 3대 전량이 리타이어했을 때, 250 LM은 끝까지 달렸습니다. 비록 우승은 Ferrari 275 P(프로토타입)가 차지했지만, 250 LM도 톱10 안에 들었습니다. 엔초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1965년에는 250 LM으로 르망을 우승하겠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페라리 공식 팀은 이미 330 P2에 집중하고 있었고, 250 LM은 사실상 버려진 차였습니다.
1965년 1월, NART(North American Racing Team)의 Luigi Chinetti가 엔초에게 제안했습니다. "나에게 250 LM을 팔아주세요. 내가 르망에서 우승시키겠습니다." 엔초는 의아했습니다. NART는 프라이빗 팀이었고, 페라리 공식 팀보다 예산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키네티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저는 드라이버를 압니다. 그들은 250 LM을 사랑합니다." 엔초는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1965년 6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최후의 승자 - 1965 르망, 마지막 자연흡기 우승
1965년 6월 19일, 프랑스 르망 서킷. 총 55대의 차가 출전했고, 그 중 7대가 Ferrari였습니다. 페라리 공식 팀은 330 P2 프로토타입 3대를 투입했고, NART는 Ferrari 250 LM 한 대(섀시 5893)를 출전시켰습니다. 드라이버는 Jochen Rindt(요헨 린트)와 Masten Gregory(마스텐 그레고리). 경쟁자는 Ford GT40 8대, Porsche 906 6대, 그리고 Ferrari 330 P2였습니다. 누구도 250 LM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레이스는 시작부터 치열했습니다. Ford GT40이 선두를 잡았고, Ferrari 330 P2가 추격했습니다. 250 LM은 중간 그룹에서 꾸준히 달렸습니다. 하지만 6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Ford GT40들이 하나씩 리타이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엔진 과열, 변속기 고장, 서스펜션 파손. 12시간이 지났을 때, Ford는 전멸했습니다. Ferrari 330 P2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연료 펌프 고장으로 2대가 리타이어했고, 1대만 남았습니다.
18시간째, NART의 250 LM이 선두로 올라섰습니다. 린트와 그레고리는 교대로 운전하며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했습니다. V12 엔진은 24시간 내내 완벽하게 작동했고, 미드십 레이아웃의 밸런스는 타이어 마모를 최소화했습니다. 24시간이 끝났을 때, NART Ferrari 250 LM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위는 Ferrari 275 P2(프로토타입), 3위는 Dino 166 P였습니다. 페라리 1-2-3 피니시였지만, 진짜 영웅은 250 LM이었습니다.
이 우승은 역사적이었습니다. 250 LM은 마지막으로 르망 24시간을 우승한 자연흡기 엔진 차량이 되었습니다. 이후 르망은 터보차저와 대배기량 엔진의 시대가 되었고, 자연흡기 V12로 우승한 차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승리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FIA가 우리를 배신했지만, 우리는 우승했다." 그리고 이것은 250 LM의 마지막 영광이었습니다.
🎯 Ferrari 250 LM 핵심 요약
✓ 생산 대수 32대 - 1963-1966년 한정 생산
✓ 3.3L V12 미드십 - 320마력, 완벽한 50:50 무게 배분
✓ FIA GT 거부 - 프로토타입 카테고리 강등
✓ 1965 르망 우승 - 마지막 자연흡기 우승차
✓ NART 사양 주류 - 약 70%가 북미 레이싱 팀용
✓ 현재 가치 196억 원 - 2015년 경매 기준
✓ 페라리 최초 미드십 GT - 혁명적 레이아웃

💎 에필로그 - 배신당한 걸작, 영원한 우승자
1965년 르망 우승 이후, 250 LM은 공식 레이스에서 서서히 은퇴했습니다. 페라리는 이미 330 P3, 330 P4 같은 더 강력한 프로토타입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고, 250 LM은 프라이빗 팀들에게 판매되었습니다. 32대의 차는 전 세계로 흩어졌고, 각각은 고유한 역사를 써나갔습니다. 일부는 빈티지 레이스에 계속 출전했고, 일부는 개인 컬렉션에 보관되었습니다.
FIA와의 갈등은 페라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만약 250 LM이 GT로 인정받았다면, 1964-1966년 GT 챔피언십을 모두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습니다. 250 LM은 프로토타입으로 살았고, 프로토타입으로 우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GT카의 몸으로 프로토타입을 이긴 것이니까요.
2024년 현재, 32대의 250 LM은 모두 추적 가능합니다. 1965년 르망 우승차(섀시 5893)는 개인 컬렉터가 소유하고 있으며, 추정가는 300억 원 이상입니다. 일부는 여전히 빈티지 레이스에 출전하며 V12의 울림을 들려주고, 일부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250 LM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배신당했지만, 우승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영원합니다.
📌 정보 투명성 고지
- 작성 목적: 클래식 레이싱카 역사와 Ferrari 250 LM에 대한 정보 제공
- 정보 출처: 페라리 공식 역사 자료, FIA 규정 문서, 경매 기록, 르망 레이싱 아카이브
- 객관성: 제조사/딜러와 무관하게 작성된 독립 콘텐츠
- 정확성 노력: 역사적 사실 기반 작성, 일부 대화 내용은 재구성
- 가격 정보: 2015년 경매 기준이며, 현재 시장가는 더 높을 수 있음
- 투자 조언 아님: 본 글은 역사적 가치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 정보 기준일: 2024년 2월 자료 기준
Ferrari 250 LM은 우리에게 배신도 승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입니다. 32대만 존재하는 희소성, FIA의 거부에도 불구한 미드십 혁명, 그리고 1965년 르망 우승의 영광. 이 모든 것은 엔초 페라리가 "FIA가 우리를 배신해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켰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늘도 미드십 혁명의 전설과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에서는 Jaguar XJ220을 만납니다. 1990년대 세계 최고속 양산차, V12에서 V6로 바뀐 논란, 그리고 281대만 태어난 영국의 슈퍼카. 재규어의 영광과 좌절 이야기가 곧 펼쳐집니다.
시즌 4, 세 번째 전설을 마칩니다.
다음 레전드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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