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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보

영국 헤리티지의 탄생 7편 - Aston Martin, 레이싱의 탄생

by Zzeus 2026.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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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6월 21일, 르망

프랑스 르망 서킷에서 영국 레이싱 그린의 애스턴 마틴 DBR1이 1위로 골인했는데, 캐럴 셸비와 로이 살바도리가 24시간을 달렸고 페라리를 이겼으며, 영국이 환호했습니다. 애스턴 마틴은 작은 회사였고, 재규어와 포르쉐보다 작았으며, 페라리와 메르세데스-벤츠와는 비교도 안 되었지만 1959년 르망에서 우승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기적이었고, 데이비드가 골리앗을 이긴 것이었으며, 영국 스포츠카의 자존심을 세운 순간이었습니다. 애스턴 마틴은 111년 역사에서 단 한 번 르망 종합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한 번으로 전설이 되었고 오늘은 애스턴 마틴이 어떻게 탄생했고 레이싱으로 명성을 쌓았는지 만나봅니다.

1959 르망 우승의 순간 ㅡ AI 이미지

🏁 1913년, 라이오넬과 로버트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는 1913년 런던에서 만났는데, 둘 다 자동차를 사랑했고 레이싱에 열정이 있었으며,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회사 차를 튜닝하고 판매했지만, 1914년 자신들의 차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Aston Martin"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Aston은 애스턴 클린턴 힐클라임 레이스에서 따왔는데, 라이오넬이 1913년 우승한 곳이었고 Martin은 라이오넬 마틴의 성이었으며, 두 단어를 합쳐 Aston Martin이 되었습니다.

첫 차는 1915년 완성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생산이 지연되었고, 1920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팔리지 않았습니다. 비쌌고, 고장이 많았으며, 생산량이 적었고, 1924년 회사는 파산했습니다. 라이오넬 마틴은 회사를 떠났고, 로버트 뱀포드는 이미 1920년 떠났으며, Aston Martin은 끝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투자자들이 계속 인수했고, 1926년 재건되었으며, 1930-40년대 레이싱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작은 회사였습니다.

🏭 1947년, 데이비드 브라운의 등장

1947년 애스턴 마틴이 또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데이비드 브라운이 나타났는데, 트랙터와 기어 제조로 부자가 된 사업가였고 자동차를 좋아했으며, "The Times" 신문에서 애스턴 마틴 매물 광고를 보고 2만 파운드에 샀습니다. 같은 해 Lagonda도 인수했는데, Lagonda는 고급 세단 브랜드였고 2.6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이 훌륭했으며, 브라운은 Lagonda 엔진을 애스턴 마틴 섀시에 넣기로 했습니다. 1950년 DB2가 탄생했고, DB는 David Brown의 이니셜이었으며, 이것이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DB2는 성공했는데, Lagonda 2.6리터 직렬 6기속 105마력은 강력했고 최고속도 180km/h는 빨랐으며, 디자인이 아름다웠고 1950-1953년 410대가 생산되었습니다. 1953년 DB2/4로 업그레이드되었고, 2+2 시트가 추가되었으며, 1957년 DB Mark III가 나왔는데 3.0리터로 배기량이 늘어났고 162마력을 냈습니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1958년에 일어났는데, DB4가 등장했습니다.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투어링이 디자인했고, 슈퍼레제라(Superleggera) 경량 차체 기술을 썼으며, 3.7리터 직렬 6기통 240마력은 당시 최고였고, 최고속도 225km/h는 페라리를 위협했습니다.

🏆 1959년, 르망의 기적

애스턴 마틴은 1928년부터 르망에 출전했지만 우승한 적이 없었고, 클래스 우승은 몇 번 했지만 종합 우승은 페라리, 재규어, 메르세데스-벤츠가 차지했으며, 1956년 데이비드 브라운은 결심했습니다. "르망에서 우승하겠다." DBR1을 개발했는데, 3.0리터 직렬 6기통 254마력은 페라리 V12보다 약했지만 가벼웠고, 알루미늄 차체로 760kg밖에 안 나갔으며, 공기역학이 뛰어났고, 연비가 좋아서 피트스톱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1959년 6월 DBR1 두 대가 르망에 출전했는데, 2번 차는 캐럴 셸비와 로이 살바도리가 몰았고 5번 차는 모리스 트린티냥과 폴 프레르가 몰았습니다. 페라리가 초반 리드했지만 밤에 고장났고, 재규어도 리타이어했으며, 새벽에 애스턴 마틴 두 대가 1-2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2번 차가 1위로 골인했고, 5번 차가 2위로 들어왔으며, 애스턴 마틴이 르망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 스포츠카 세계 챔피언십도 우승했고, 1959년은 애스턴 마틴 역사상 최고의 해가 되었습니다.

GT의 정의

애스턴 마틴은 스스로를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라고 정의하는데, 페라리처럼 순수한 스포츠카도 아니고 롤스로이스처럼 순수한 럭셔리 카도 아니며, 그 중간입니다. 빠르지만 편안하고, 스포티하지만 우아하며, 레이스 트랙도 가지만 장거리 여행도 할 수 있고, 이것이 GT의 본질입니다. DB2부터 시작된 이 철학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애스턴 마틴으로 런던에서 모나코까지 1,000km를 달릴 수 있고, 고속도로에서 250km/h로 달리다가 호텔 발레파킹에 맡길 수 있으며, 드레스 코드가 있는 레스토랑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페라리와 다른 점인데, 페라리는 극한의 성능을 추구하지만 애스턴 마틴은 균형을 추구하고, 포르쉐는 효율과 실용성이지만 애스턴 마틴은 우아함과 스타일이며, 벤틀리는 럭셔리가 우선이지만 애스턴 마틴은 스포티함이 먼저입니다. 1959년 르망 우승은 이 철학을 증명했는데, DBR1은 페라리보다 느렸지만 끝까지 달렸고, 무거운 재규어보다 가벼웠으며, 24시간 동안 완벽한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애스턴 마틴이고, 111년간 지켜온 정체성입니다.

🎯 1963년, DB5의 전설

1963년 DB5가 등장했는데, DB4의 진화형이었고 4.0리터 직렬 6기통 282마력은 강력했으며, 최고속도 240km/h는 당시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디자인은 우아했고, 실내는 가죽과 나무로 덮였으며, 5단 수동변속기는 ZF제였고, 1963-1965년 1,021대가 생산되었습니다. DB5는 좋은 차였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1964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 "Goldfinger"에 DB5가 등장했고, 기관총, 회전 번호판, 이젝터 시트가 장착되었으며, 전 세계가 열광했습니다.

DB5는 하루아침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차가 되었고, 제임스 본드 = 애스턴 마틴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으며, 60년이 지난 2024년에도 이 이미지는 유효합니다. 1965년 DB6이 나왔고, 1967년 DBS가 등장했으며, 1969년 V8 엔진이 처음 탑재되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는 힘든 시기였는데, 오일쇼크로 스포츠카 시장이 무너졌고 1975년 데이비드 브라운이 회사를 팔았으며, 애스턴 마틴은 다시 파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1980-90년대 여러 오너를 거쳤고, 포드가 1987년 인수했으며, 2007년 다시 매각되었습니다.

Aston Martin DB12 ㅡ AI 이미지

📺 다음 편 예고

영국 헤리티지의 탄생 8편에서는 "Aston Martin - 제임스 본드와 60년"을 다룹니다.

1964년 Goldfinger부터 2021년 No Time To Die까지, 25편의 본드 영화에 등장한 애스턴 마틴, DB5의 아이콘화, 그리고 본드가 애스턴 마틴에게 준 것과 애스턴 마틴이 본드에게 준 것까지 60년 파트너십을 만나봅니다.

007의 차를 만나봅니다.

1913년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가 만났고,
애스턴 클린턴 레이스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Aston Martin이 탄생했습니다.

1947년 데이비드 브라운이 인수했고,
DB 시리즈가 시작되었으며,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1959년 6월 21일 르망에서,
DBR1이 페라리를 이겼고,
영국이 환호했습니다.

"Power, Beauty, Soul."
힘, 아름다움, 영혼. - Aston Martin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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