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론 머스크가 BYD를 보며 비웃었습니다.
"기술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기업"이라고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직접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사촌형 돈 빌려 창고에서 시작한 29살이
어떻게 테슬라를 꺾었는지, 오늘 그 답을 드립니다.
2023년 4분기, 전 세계 전기차 시장
BYD가 테슬라를 추월했습니다. 외신들이 일제히 "BYD가 테슬라를 제쳤다"는 헤드라인을 쏟아냈는데, 세계 전기차 1위를 지켜왔던 테슬라가 처음으로 2위로 내려앉은 순간이었습니다. 테슬라 주가는 32% 하락했고, 머스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12년 전 머스크에게 "기술력이 강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 회사가 해낸 일이었습니다. 2024년 BYD 친환경차 판매는 427만 대로 3년 연속 세계 1위였고, 매출은 테슬라를 앞질렀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BYD 한 EV 오로라그린 프리미엄 세단 ㅡ AI 이미지
🔋 1995년, 창고의 20명
왕촨푸는 1966년 안후이성 우후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는데, 형제 7명이었고 어릴 때 부모를 잃었으며, 형의 도움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형의 도움에 보답하듯 공부에 매달렸는데, 명문 중난대학 야금물리학과에 입학해 4년 내내 수석이었고, 졸업 후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에서 연구원이 됐으며, 26세에 실험실 부주임으로 파격 승진했습니다. 안정된 길이었는데, 연구원 자리는 당시 중국에서 선망의 직업이었고, 월급도 괜찮았으며, 평생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선전의 배터리 회사 부사장으로 옮기면서 눈이 뜨였는데, 2만 위안이 넘는 비싼 휴대폰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배터리 수요가 폭발한다"는 걸 직감했고, 그 직감이 인생을 바꿨습니다. 1995년 2월 29살의 왕촨푸가 안정된 직장을 내던지고 사촌형에게 돈을 빌렸는데, 초기 자본금 250만 위안(약 5억 원)이었고 직원 20명이었으며, 광둥성 선전의 작은 창고가 BYD의 시작이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지배하던 배터리 시장에서 틈새를 찾았는데, 값비싼 자동화 설비 대신 사람이 하는 방식을 택했고,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의 강점을 살렸으며, 품질은 일본과 동급이면서 가격은 훨씬 낮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새벽 1-2시까지 일했는데, 퇴근도 잊고 의자에서 쪽잠을 자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직원들도 함께 달렸으며, 그 집념이 빠른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2000년대 초 모토로라에 배터리를 납품하기 시작했는데, 이어서 노키아, 삼성에도 들어갔고, 일본 산요전기와 소니의 아성을 흔들기 시작했으며, 2002년 니켈-카드뮴 배터리 점유율 과반을 넘으며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배터리 시장을 장악했을 때 왕촨푸는 다음 목표를 정했는데, "배터리가 들어가는 가장 큰 제품"인 자동차였고, 2003년 그 결정을 실행했습니다.
🚗 2003년, 자동차 사업의 시작
2003년 BYD가 파산 직전의 친촨자동차를 인수했는데, 배터리 회사가 자동차로 간다고 하자 주변이 말렸고, 주가가 폭락했으며, 투자자들이 "왜 잘 되는 배터리를 두고 모르는 자동차를 하느냐"고 했습니다. 왕촨푸는 흔들리지 않았는데, 자동차는 배터리의 연장선이었고, 전기차 시대가 오면 배터리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가 자동차도 잘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전했는데, 2005년 첫 양산차 F3가 나왔고, 가격이 저렴해서 팔렸지만 품질이 문제였으며, "싸구려 중국차"라는 이미지가 붙었습니다. 2008년 전환점이 왔는데, 세계 최초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F3DM을 내놓았고,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함께 쓰는 DM 시스템의 시작이었으며, 닛산 리프보다 2년이나 앞선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워런 버핏이 BYD 지분 10%를 2억 3,000만 달러에 샀는데, 당시 배터리 원액을 직접 마셔서 안전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일화가 유명했고, 세계 최고 투자자가 BYD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2010년 BYD가 중국에서 연간 52만 대를 팔며 판매 1위가 됐는데,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모두 만드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먹힌 것이었고, 중국 최고 자동차 회사로 올라섰습니다.
2011년 머스크가 BYD를 "기술력이 강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 말이 한국에도 전해졌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실제로 당시 BYD 차의 품질은 세계 기준에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촨푸는 그 말에 대해 반박하는 대신 묵묵히 기술을 쌓았는데, 블레이드 배터리를 개발했고, DM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진화시켰으며, 디자인과 품질을 올리는 데 수십조 원을 투자했습니다. 2020년 블레이드 배터리가 나왔는데, 기존 배터리보다 안전하고 가볍고 저렴한 혁신이었고, 못으로 찔러도 화재가 안 난다는 시연이 화제가 됐으며, 배터리 회사 출신답게 배터리에서 먼저 혁신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2021년 한·탕·송·씰 등 새로운 라인업이 쏟아졌는데,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졌고 내장재 품질이 올라갔으며, "중국차가 이렇게 좋아졌나"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 한국 시장의 BYD
2023년 BYD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첫 모델이 아토3였고 현대 코나 전기차보다 1,000만 원 이상 저렴했으며, 보조금 지원 시 2,000만 원대에 살 수 있는 가격이었습니다. 반응은 조심스러웠는데, 기술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중국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보조금 받아서 싸게 사더라도 중고 가격이 걱정된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토3가 기대보다 조용한 반응을 얻었는데, 월 100-200대 수준이었고, 현대 코나나 기아 니로 전기차의 판매와는 비교가 안 됐으며, 중국 브랜드 허들이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BYD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2024년 씰을 추가했고 더 큰 차종으로 라인업을 확대했으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한국이 BYD에게 쉬운 시장이 아닌데, 현대기아라는 강력한 홈팀이 있고, K-EV 보조금 정책이 외국 브랜드에 불리하며, 소비자들의 국산차 선호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BYD가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팔린다는 것 자체가 "까다로운 시장에서도 인정받았다"는 브랜드 가치가 되기 때문이었고, 장기적 포석이었습니다.
2024년 BYD의 전 세계 친환경차 판매는 427만 대였는데, 순수 전기차만 176만 대로 테슬라 179만 대와 거의 대등했고, PHEV까지 합치면 압도적 1위였으며, 3년 연속 세계 1위를 지켰습니다. 매출은 157조 원으로 테슬라 143조 원을 앞질렀는데, 12년 전 "기술력이 강하지 않다"던 그 회사가 테슬라를 매출로도 앞선 것이었고, 머스크가 틀렸다는 걸 숫자로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BYD가 현재 62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는데, 유럽, 동남아시아, 호주, 남미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특허만 6만 2,000건 이상 보유한 기술 회사가 됐으며, 창고에서 20명이 배터리를 만들던 회사는 이제 완전히 다른 것이 됐습니다.
왕촨푸의 철학 - "남들이 생각 못하는 걸 감히 생각한다"
왕촨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배터리 회사가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 2008년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내놓는 것, 블레이드 배터리로 업계를 바꾸는 것, 모두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불가능하다고 한 것들이었습니다. 버핏이 BYD에 투자한 이유를 물었을 때 "왕촨푸는 토머스 에디슨과 잭 웰치를 합쳐놓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기술 혁신과 경영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것이었고, 버핏답게 핵심을 짚었습니다. BYD가 전기차뿐 아니라 버스, 트럭, 지게차, 모노레일까지 만드는데, 모두 배터리가 들어가는 것들이었고, "배터리로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것을 만들겠다"는 일관된 전략이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일부 구간의 전동차도 BYD가 납품했는데, 한국인들이 매일 타는 지하철에 이미 BYD 기술이 들어있었고, "이미 우리 생활 속에 BYD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사실이었습니다.
현대기아그룹이 세계 3위인데 BYD 하나와 비교해도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판매 대수에서 BYD가 앞섰고, 배터리 기술에서도 앞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가격은 현저히 낮습니다. 한국이 자동차 수출 강국이면서 동시에 중국 전기차가 가장 두려운 나라가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인데, BYD를 만든 왕촨푸도 젊은 시절 한국 배터리 기술을 참고했을 것이고, 이제 그 자식 같은 회사가 스승의 나라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BYD 아토3 스키화이트 ㅡ AI 이미지
1995년 창고에서 20명이 배터리를 만들었고,
모토로라·노키아에 납품하며 세계 1위가 됐으며,
2003년 파산 직전 자동차 회사를 샀습니다.
2008년 세계 최초 PHEV를 만들었고,
2011년 머스크에게 비웃음을 당했으며,
2020년 블레이드 배터리로 반격했습니다.
2023년 테슬라를 추월했고,
2024년 427만 대로 3년 연속 1위가 됐으며,
머스크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남들이 생각 못하는 걸 감히 생각한다 - 왕촨푸"
창고에서 테슬라를 꺾기까지 - BYD 1편
중국의 탄생 6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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