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메트로카 21부: 포르쉐 917 - 르망을 정복한 독일의 괴물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침이지만 조금은 쌀쌀해 졌나요? ^^ 따뜻한 인사로 시작하는 9월의 메트로카 이야기입니다!

오늘 소개할 차는 포르쉐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 레이싱카, 포르쉐 917입니다. 1969년 데뷔 당시 "운전할 수 없는 괴물"이라 불렸지만, 불과 1년 만에 르망 24시 정복자로 변신한 이 차의 이야기는 정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 절망에서 희망으로: 917의 탄생 배경
1968년, 포르쉐는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포드 GT40이 르망에서 4연승을 기록하며 유럽 명문들을 굴복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포르쉐는 독일의 작은 자동차 회사에 불과했고, 페라리와 함께 포드의 막강한 자금력에 속수무책이었죠.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1968년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 규정을 완화하며, 호몰로게이션 최소 생산대수를 50대에서 25대로 줄인 것입니다. 이를 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회사의 운명을 걸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었습니다. 포르쉐는 단 10개월 만에 기존 908을 완전히 뜯어고쳐 새로운 레이싱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2.2L V8 엔진을 4.5L 수평대향 12기통으로 바꾸고, 차체를 길게 늘여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917이 탄생했습니다.
💥 재앙의 시작: 롱테일의 배신
1969년 3월, 르망에서 진행된 첫 테스트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길게 늘인 꼬리(롱테일) 때문에 차가 고속에서 하늘로 떠오르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테스트 드라이버들은 "이 차로 레이스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테스트 과정에서 드라이버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25대를 생산해 호몰로게이션을 받은 상황이라 포르쉐는 어쩔 수 없이 1969년 시즌에 출전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1969년 시즌 내내 917은 기계적 문제와 불안정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포르쉐는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고, 피에히는 사내에서 "회사를 망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 기적의 반전: 벌레가 알려준 해답
전설적인 일화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1969년 말, 포르쉐 엔지니어들이 테스트 후 917을 점검하던 중 차량 후미에만 벌레 자국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공기가 차 뒤쪽으로 제대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발견을 바탕으로 포르쉐는 영국의 존 와이어(John Wyer)와 함께 집중적인 개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긴 꼬리를 과감히 잘라내고, 하부를 쐐기 모양으로 파낸 새로운 버전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917K(K는 독일어 Kurz, 즉 "짧다"는 뜻)였습니다.

• 최고속도: 비슷 (380-390km/h)
• 안정성: 917K 압도적 우위
• 코너링: 917K 월등
• 드라이버 신뢰도: 하늘과 땅 차이
🏆 르망 정복: 포르쉐의 황금시대
1970년 1월 31일,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서 917K는 데뷔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위와 2위를 동시에 석권한 것이었습니다. 포르쉐가 마침내 포드를 뛰어넘는 순간이었죠.
그리고 1970년 6월 14일,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포르쉐는 마침내 첫 번째 종합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한스 헤르만(Hans Herrmann)과 리처드 아트우드(Richard Attwood)가 몰던 917K가 5,335km를 달려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성능 사양 | 917 (1969) | 917K (1970-71) |
---|---|---|
엔진 | 4.5L 수평대향 12기통 | 5.0L 수평대향 12기통 |
최대출력 | 520마력 | 630마력 |
무게 | 800kg | 800kg |
0-100km/h | 2.8초 | 2.3초 |
최고속도 | 380km/h | 390km/h |
1971년에는 더욱 압도적이었습니다. 포르쉐 917K는 평균시속 222km/h로 달려 또다시 1-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기록은 무려 39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2010년 아우디 R15 TDI에 의해 경신될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 할리우드와 핑크 피그: 917의 문화적 영향
917의 명성은 레이싱을 넘어 대중문화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은 이 차에 반해 거액을 지불하고 917을 구입했을 뿐만 아니라, 1970년 르망 레이스를 직접 촬영해 영화 '르망'(1971)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촬영 과정에서도 917의 험악한 성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프로 스턴트 드라이버조차 917의 불안정성 때문에 사고를 당해 팔을 다쳤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 투자 가치: 25대에서 159억까지
1969년 당시 호몰로게이션을 위해 생산된 25대의 917은 대부분 실제 도로 주행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포르쉐의 모든 직원이 납기를 맞추기 위해 동원되었고, 일부는 트럭용 차축을 임시로 사용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현재 이 차들의 가치는 천문학적입니다. 2024년 페블 비치 경매에서 한 대가 1,400만 달러(약 159억원)에 낙찰되어 경매 출품 포르쉐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917의 가치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포르쉐 브랜드 파워, 극도의 희소성, 그리고 르망 2연승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 전 세계 25대만 존재 (실질적으로는 더 적음)
• 포르쉐 첫 르망 우승의 주역
• 영화 '르망'으로 대중적 인지도 확보
•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술적 경이로움
• 포르쉐 브랜드 사상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
🔮 현재까지 이어지는 917의 DNA
917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9년 포르쉐는 917 50주년을 기념해 '917 컨셉트'를 공개했고, 2024년에는 963 RSP라는 원오프 모델을 통해 917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포르쉐의 모든 고성능 모델에는 917에서 검증된 공기역학 기술과 경량화 노하우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917은 현대 슈퍼카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죠.

바쁜 시간 내서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다음 시트로엥 SM 편에서도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