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의 탄생 7편 - 쌍용자동차 2편, 위기와 생존

by Zzeus 2026. 6. 10.
반응형

 

오늘은 정말 힘든 이야기입니다.
7번의 주인이 바뀌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쌍용자동차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2009년 5월 22일, 평택공장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사실 이 파업은 예고된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기술만 빼가고 2009년 1월 경영권을 포기했으며,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가 전체 직원의 40%에 가까운 2,646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을 외치며 77일간 공장을 지켰습니다.

2009년 8월 6일 77일 만에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일부는 복직되었으며 일부는 희망퇴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깊이 새겨졌는데, 33명이 비극적 선택을 하는 아픔도 있었고, 2020년에야 해고자 전원이 복직되었습니다. 오늘은 1998년부터 2024년까지 쌍용자동차의 파란만장한 생존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2000년대 쌍용 렉스턴 실버 ㅡ AI 이미지

💸 1998년, 대우의 품으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부터 쌍용자동차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는데, 1992년부터 막대한 적자가 쌓였고 쌍용그룹 전체가 어려웠으며, 삼성과 벤츠에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모두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1997년 12월 대우그룹과 매각 협상을 진행했고, 1998년 1월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는데, 무쏘와 코란도에 대우 마크가 붙기 시작했으며, 쌍용 이름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9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을 선고받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새 주인도 무너진 것이었고, 쌍용자동차는 2000년 대우에서 분리되어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으며, 또 다른 주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채권단 관리 하에서도 쌍용자동차는 차를 만들었는데, 2002년 렉스턴을 출시했고 벤츠 기술이 담긴 프리미엄 대형 SUV였으며, 연간 16만 1천 대로 생산 정점을 찍었습니다. 렉스턴은 성공적이었고 쌍용의 기술력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으며, 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04년 10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는데, 당시 노무현 정부와 채권단의 결정이었고 상하이차는 쌍용 임직원 전원 고용 승계와 생산 확대를 약속했으며, 중국 판매망을 활용하겠다고 했습니다. 기대가 컸는데,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쌍용이 팔린다면 엄청난 기회였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는데, 상하이차는 약속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쌍용의 핵심 기술과 핵심 연구원들을 중국으로 빼갔으며, 신차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카이런과 액티언 같은 신모델이 나왔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고, 2007년부터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으며, 2008년 국제유가 폭등과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 2009년, 77일의 눈물

2009년 1월 9일 상하이자동차가 경영권을 포기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 기술만 빼가고 먹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한국 사회가 분노했습니다. 2009년 4월 회사가 2,646명 정리해고를 발표했고, 이는 전체 직원의 40%에 가까운 숫자였으며,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2009년 5월 22일 노동조합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에 돌입했는데, 공장 지붕에 올라가 저항했고, 경찰이 헬기로 진압에 나섰으며, 최루액과 물대포가 동원되었습니다. 77일간의 처절한 싸움이었는데, 바깥에서는 가족들이 "우리 아빠 살려내라"며 눈물로 호소했고, 안에서는 노동자들이 버텼으며, 한국 사회 전체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2009년 8월 6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었는데, 일부는 무급 휴직, 일부는 희망퇴직으로 결론이 났고, 파업은 끝났지만 상처는 깊었으며, 3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2020년 5월에야 노노사정 4자 합의로 해고자 전원이 복직되었는데, 11년 만이었고, 그 긴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2010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는데, 2011년 법원 회생절차가 종결되면서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힌드라는 인도 최대 자동차 그룹이었고, 쌍용의 오프로드 기술에 관심이 있었으며, SUV 전문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쉽지 않았는데, 상하이차가 빼간 기술 공백을 메우는 데 시간이 걸렸고, 신차 개발 역량을 다시 쌓아야 했으며, 쌍용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도 낮아져 있었습니다. 2012년 코란도 스포츠 픽업트럭을 출시했는데, 국내 유일의 레저용 픽업트럭이었고 독특한 포지션이었으며, 마니아들이 좋아했습니다. 2013년 코란도C가 나왔고 2014년 코란도 투리스모 대형 SUV도 있었으며, 조금씩 라인업을 다시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 2015년, 티볼리의 기적

2015년 티볼리가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이 놀랐는데, 쌍용차답지 않게 세련되고 젊은 디자인이었고 소형 SUV 시장을 정확히 겨냥했으며, 가격도 1,695만 원부터 합리적이었습니다. 사실 2010년대 소형 SUV 붐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현대 투싼, 기아 스포티지보다 작은 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싸고 실용적인 SUV를 원하는 젊은 층이 타깃이었습니다. 티볼리가 그 수요를 정확히 잡았고, 출시 첫 해 4만 대 이상이 팔리면서 쌍용 역사상 최고의 신차 효과를 냈으며, 오랜 위기 끝에 드디어 히트작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2016년 쌍용자동차가 7년 만에 영업이익 280억 원 흑자를 기록했고,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으며, "드디어 살아났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티볼리 에어도 나왔는데, 롱바디 버전이었고 더 넓었으며, 가족용으로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신차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는데, 2017년부터 다시 판매가 줄기 시작했고 후속 신차 개발이 늦어졌으며, 코란도 후속 모델이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2020년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 지배권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고, 또 다시 새 주인 찾기가 시작되었으며, 2021년 에디슨모터스가 인수하는 듯 했지만 계약이 파기되었습니다. 2022년 6월 KG그룹이 최종 낙점되었고, 쌍용자동차는 18년 만에 국내 자본을 주주로 맞게 되었으며, 중국과 인도를 거쳐 다시 한국 회사가 된 것이었습니다. 2023년 3월 22일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KG모빌리티로 변경했는데, 35년간 이어온 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70년을 버텨온 이유

쌍용자동차가 70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차가 좋았기 때문이었는데, 대우에 팔리고 상하이차에 팔리고 마힌드라에 팔려도 코란도와 무쏘와 렉스턴은 계속 팔렸고, 쌍용차를 믿는 고객들이 있었으며, 그 충성 고객들이 회사를 버티게 해줬습니다. 벤츠 기술로 만든 디젤 엔진의 내구성이 전설이었는데, 20만 킬로미터를 넘겨도 멀쩡하다는 말이 돌았고, 한번 쌍용차를 산 사람은 다음에도 쌍용을 샀으며, 그 신뢰가 70년을 버틴 힘이었습니다. 평택 공장 노동자들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었는데, 2009년 77일 파업도 결국은 회사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고, 자신들이 만든 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으며, 그 자부심이 쌍용자동차의 진짜 DNA였습니다. 7번 주인이 바뀌었지만 평택 공장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켰고, 그들이 만든 차가 한국 도로를 달렸으며, 그것이 쌍용자동차의 역사였습니다.

2024년 현재 KG모빌리티는 토레스와 티볼리, 코란도로 연간 10만 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전성기 16만 대에는 못 미치지만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고, 전기차 토레스 EVX도 출시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코란도라는 이름은 KG모빌리티로 바뀐 후에도 살아있는데, 1983년부터 40년 이상 이어온 이름이고, "Korea Can Do" 정신이 아직 남아있으며, 쌍용자동차가 KG모빌리티가 되어도 코란도는 코란도입니다. 하동환이 드럼통으로 버스를 만들던 1954년부터 70년, 정말 긴 여정이었고, 아픔도 많았지만 살아남았으며, 그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2000년대 쌍용 렉스턴 실버 ㅡ AI 이미지

쌍용자동차 시리즈 - 완결

2편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쌍용자동차 (1-2편): 1954년 하동환이 드럼통으로 버스를 만들며 시작했고, 1988년 코란도 훼미리로 한국 최초 스테이션 왜건 SUV를 선보였으며, 1993년 무쏘로 프리미엄 SUV 명가가 되었습니다. 벤츠 기술로 품질을 지켰고, 1997년 체어맨으로 대형 세단까지 만들었지만, 1998년 대우에 팔리면서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2004년 상하이차가 기술을 빼갔고, 2009년 77일 파업의 아픔을 겪었으며, 2010년 마힌드라로 넘어갔습니다. 2015년 티볼리로 부활의 기쁨을 맛봤지만 또 위기가 왔고, 2022년 KG그룹이 인수했으며, 2023년 KG모빌리티로 새 출발했습니다. 7번 주인이 바뀌어도 코란도는 살아있습니다.

드럼통에서 시작해서 70년을 버텼습니다.

대우도, 상하이차도, 마힌드라도
쌍용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했고,
코란도는 40년 넘게 살아있습니다.

77일 파업의 눈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쌍용차를 타고 달리고 있으며,
그것이 쌍용자동차의 진짜 유산입니다.

쌍용자동차 시리즈
2편의 여정을 마칩니다.

📺 다음 편 예고

한국의 탄생 8편에서는 "기아자동차 1편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을 다룹니다.

1944년 창업부터 브리사, 프라이드, 스포티지까지 기아가 어떻게 50년을 버텼는지, 그리고 1998년 현대에 합병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두 번째입니다.

1998년 대우에 팔렸고,
1999년 대우도 무너지면서 채권단으로 넘어갔으며,
2004년 상하이차에 기술을 빼앗겼습니다.

2009년 77일 파업의 눈물이 있었고,
2010년 마힌드라가 살려냈으며,
2015년 티볼리로 7년 만에 흑자를 냈습니다.

2022년 KG그룹이 인수했고,
2023년 KG모빌리티로 새 출발했으며,
코란도는 여전히 달리고 있습니다.

"Korea Can Do"
70년 생존의 기록 - 쌍용자동차

한국의 탄생 7편 완결.
다음 편: 기아자동차 1편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