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를 기억하시나요?
1990년대 주말이면 산으로 달리던 그 당당한 SUV,
쌍용자동차가 어떻게 한국 SUV의 명가가 되었는지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1954년 서울 마포구 창천동
스물네 살의 하동환이 하동환자동차제작소를 설립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번듯한 공장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전쟁 직후라 아무것도 없었고, 드럼통을 펴서 만든 차체에 폐차 엔진을 얹어 버스를 만들었으며, 그래서 "드럼통 버스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 작은 공장이 훗날 코란도와 무쏘로 한국을 달리는 쌍용자동차의 시작이었습니다.
1954년부터 1988년 쌍용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34년간 이름이 세 번 바뀌었는데, 하동환자동차제작소에서 동아자동차를 거쳐 쌍용자동차가 되었고, 그 긴 여정 끝에 1988년 코란도 훼미리를 내놓으면서 한국 SUV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1988 쌍용 코란도 훼미리 화이트 ㅡ AI 이미지
🔧 1954-1974년, 드럼통에서 지프까지
1954년 하동환이 서울 마포구 창천동에 작은 공장을 세웠는데, 당시 한국은 전쟁 직후라 모든 것이 부족했고, 버스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새 차를 만들 재료가 없었습니다. 하동환은 미군이 버리고 간 드럼통을 펴서 차체를 만들고, 폐차에서 엔진을 꺼내 조합했으며, 그렇게 만든 버스가 실제로 서울 거리를 달렸습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해냈고, "드럼통 버스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것이 한국 현존 최장수 자동차 회사의 시작이었습니다. 1963년 동방자동차공업과 합병하면서 하동환자동차공업 주식회사로 법인을 출범했고, 1966년에는 국내 최초 후방엔진 버스를 브루나이에 수출했으며, 1967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형버스를 베트남에 수출했습니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만들어 해외까지 파는 회사가 된 것이었고, 하동환의 뚝심이 이룬 성과였습니다.
1967년 신진자동차와 업무 제휴를 맺었고, 1974년에는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을 합작 설립했는데, 이게 훗날 코란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74년 10월 신진지프가 하드탑, 소프트탑, 픽업 등 다양한 지프 차량을 선보였는데, 험한 길도 거뜬한 4륜구동이었고 실용적이었으며, 군용과 농업용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1977년 회사 이름이 동아자동차공업으로 바뀌었고, 하동환 회장이 경영을 이어갔으며, 지프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1983년에는 신진지프의 후속 모델 코란도가 나왔는데,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개선되었고 코란도라는 이름은 Korea Can Do의 약자라는 설이 있으며, 한국의 자부심이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코란도는 국내 최장수 자동차 모델로 2024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이름 하나가 40년 이상 살아남은 것이었으며, 쌍용 정체성의 핵심이었습니다.
🏆 1986년, 쌍용그룹과 메르세데스-벤츠
1986년 쌍용그룹이 동아자동차를 인수했는데, 쌍용그룹은 당시 건설과 시멘트로 성장한 중견 재벌이었고, 자동차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려 했습니다. 1988년 회사 이름이 쌍용자동차로 바뀌었고, 쌍용그룹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가 시작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 제휴였습니다. 벤츠와 소형 상용차 및 디젤 엔진 기술 제휴를 체결했는데, 벤츠 디젤 엔진을 한국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게 쌍용자동차의 강점이 되었으며, "벤츠 엔진 달린 한국 SUV"라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1988년 코란도 훼미리가 출시되었는데, 국내 최초 스테이션 왜건형 SUV였고 넓은 실내에 7인승이었으며, 벤츠 디젤 엔진의 안정감이 돋보였습니다. 출시하자마자 반응이 좋았는데, 코란도의 오프로드 능력에 패밀리카 편의성이 더해졌고, 이름처럼 가족을 위한 코란도였으며, 1990년대 SUV 붐의 선두에 서게 됩니다.
1993년 무쏘가 출시되었는데, 이게 쌍용자동차 역사의 정점이었고 이탈리아 디자이너 켄 그린리가 스타일링을 맡았으며, 당시 한국차답지 않게 유럽풍으로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벤츠 OM602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했고, 2.9리터 100마력으로 묵직한 힘이 있었으며, 사륜구동 시스템도 탄탄했습니다. 가격은 2,5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로 비쌌는데, 당시 중형 세단이 1,500만 원이었으니 확실히 프리미엄이었고, "무쏘 한 대 뽑으면 성공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갤로퍼와 쌍벽을 이루는 고급 SUV였고, 갤로퍼가 직선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라면 무쏘는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였으며, 두 차가 1990년대 한국 SUV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1993-1998년 무쏘가 연간 2만 대 이상 팔렸고, 중산층 이상의 상징이었으며, 드라이브 갈 때 무쏘를 타는 게 로망이었습니다.
🚐 1995년, 이스타나와 체어맨
1995년 이스타나가 출시되었는데, 벤츠 MB100을 기반으로 한 승합차였고 그레이스와 경쟁했으며, 더 고급스러운 포지션이었습니다. 벤츠 기반이라는 게 강점이었는데, 실내가 더 넓고 조용했으며, 학원 차나 교회 버스보다는 기업 임원용이나 리무진으로 쓰였습니다. 1997년에는 체어맨이 나왔는데, 쌍용 최초의 대형 고급 세단이었고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으며, "한국 최고급 국산차"를 표방했습니다. 벤츠 엔진에 벤츠 플랫폼이었으니 품질은 검증됐고, 가격은 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현대 그랜저보다 훨씬 비쌌으며, 기업 회장들과 고위 공무원들이 탔습니다. 당시 에쿠스가 나오기 전이었고, 국산 최고급 세단의 빈자리를 체어맨이 채웠으며, 쌍용자동차가 SUV를 넘어 럭셔리 세단까지 만드는 회사가 된 것이었습니다. 1997년까지 쌍용자동차는 승승장구했는데, 연간 판매 10만 대를 넘겼고, 코란도, 무쏘, 이스타나, 체어맨으로 라인업이 완성되었으며, 한국 SUV의 명가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벤츠와의 기술 제휴는 쌍용의 가장 큰 자산이었는데, "벤츠 엔진"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통했고, 실제로 품질도 좋았으며,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차별점이었습니다. 무쏘와 체어맨이 벤츠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었고, 현대와 기아가 대중 시장을 공략할 때 쌍용은 프리미엄으로 차별화했으며, 그 전략이 1990년대까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가 기다리고 있었고, 대우그룹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쌍용의 자주적인 경영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위기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쌍용의 철학: SUV의 명가
쌍용자동차가 SUV에 집중한 건 우연이 아니었는데, 1954년 드럼통으로 버스를 만들 때부터 험한 환경에서 쓸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게 DNA였고, 지프와 코란도로 오프로드를 개척했으며, 무쏘로 프리미엄 SUV를 완성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 제휴는 단순한 부품 수입이 아니었는데, 벤츠 엔지니어들이 평택 공장에 상주하며 기술을 전수했고, 한국 기술자들이 독일에서 교육받았으며, 진짜 기술 이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쌍용 디젤 엔진의 내구성은 업계 최고 수준이었고, 택시나 관용차로 20만 킬로미터 이상 달려도 엔진이 멀쩡했으며, 무쏘 오너들이 10년 이상 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코란도는 국내 최장수 모델로 40년을 이어왔는데, 이름 하나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건 쌍용의 오프로드 철학이 일관됐기 때문이었고, 시대가 바뀌어도 코란도 정신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쌍용의 정체성이었습니다.
1990년대 쌍용자동차가 한국 SUV 문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주말이면 무쏘와 코란도 훼미리가 설악산과 지리산으로 향했고, 온 가족이 SUV에 짐을 싣고 캠핑을 떠났으며, "주말엔 SUV 타고 어디든"이라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지금 한국이 세계적으로 SUV 선호도가 높은 나라인 것도 이 시절 쌍용이 뿌린 씨앗 덕분이었고, 아시아 록스타가 씨앗을 뿌렸다면 쌍용의 코란도와 무쏘가 그 문화를 활짝 피웠으며, 오늘날 한국 도로에 SUV가 넘치는 것은 그 유산입니다.

1993 쌍용 무쏘 다크그린 ㅡ AI 이미지
1954년 드럼통으로 버스를 만들며 시작했고,
1988년 코란도 훼미리로 SUV 명가가 되었으며,
1993년 무쏘로 한국 프리미엄 SUV를 완성했습니다.
벤츠 엔진의 신뢰성으로 프리미엄을 지켰고,
1997년 체어맨으로 대형 세단까지 만들었으며,
연간 10만 대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가 기다리고 있었고,
쌍용자동차의 시련이 시작되려 했으며,
생존을 위한 긴 싸움이 남아있었습니다.
"Korea Can Do"
코란도의 정신 - 쌍용자동차 1편
한국의 탄생 6편 완결.
다음 편: 쌍용 2편 - 위기와 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