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장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세계를 향해 달리던 대우자동차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함께 그 마지막을 기억해보겠습니다.
1999년 8월, 서울
대우그룹 전체가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예고된 결말이었는데 그 이유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김우중 회장이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빚을 내서 계속 확장했으며, 1999년 당시 대우그룹 부채가 약 86조 원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가예산이 84조 원이었으니, 한 기업의 빚이 나라 예산을 넘는 규모였습니다.
1999년 8월 워크아웃이 선고되었고 그룹이 해체 수순에 들어갔으며, 대우자동차는 2002년 10월 GM에 넘어가면서 47년 역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맵시, 르망, 티코, 레간자를 만들었던 회사가, 수십만 명이 다니던 회사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1998 대우 마티즈 스카이블루 ㅡ AI 이미지
⚠️ 1997년, 균열의 시작
1997년 11월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대우는 처음에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김우중 회장이 정부와 친밀했고 "대우는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시장에 있었으며, 실제로 1997년 직후에는 다른 재벌들처럼 즉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98년 초반 김우중 회장은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도 해외 사업을 계속 확장했는데,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대우 자동차가 잘 팔리고 있었고 해외 법인들이 수익을 내고 있었으며, 조금만 더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998년 대우자동차와 삼성자동차의 빅딜 협상이 시도되었는데, 삼성차를 대우가 받고 대우전자를 삼성에 넘기는 교환이었지만 부산 하청업체 문제와 SM5 생산 문제로 결국 무산되었고, 이게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1999년 들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일본 노무라증권이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고 금융시장에서 대우에 대한 악성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으며,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7월 김우중 회장이 마지막 카드를 꺼냈는데, 사재 3조 원을 출연하고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잠시 위기를 넘기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86조 원의 빚 앞에서 3조 원은 역부족이었고, 1999년 8월 결국 대우그룹 41개 계열사 전체가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되었으며, 그룹 해체가 공식화되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출국 금지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해외로 나갔고, 2005년에야 귀국했으며, 분식회계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ㅡ AI
🏭 2000년, 대우차만 남았다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자동차도 분리되었는데, 2000년 4월 쌍용자동차가 먼저 분리되었고 독립 법인이 되었으며, 대우자동차만 남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워크아웃 이후 대우자동차는 생각보다 잘 됐는데, 2000년 북미와 유럽에서 최대 판매 실적을 기록했고 마티즈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자동차 사업 자체는 살아있었습니다. 마티즈는 1998년 출시된 경차였는데, 티코보다 훨씬 세련된 디자인이었고 이탈리아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했으며, 국내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귀엽고 실용적인 차"로 사랑받았습니다. 칼로스, 라세티, 누비라 같은 모델들도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었는데, 사실 대우자동차의 차들이 나쁜 게 아니었고 회사 운영이 문제였으며, 자동차만 따로 살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2001년 GM과 매각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채권단이 대우차 매각을 추진했고 GM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였으며, 오랜 협상 끝에 2001년 9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협상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는데, GM이 부채는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고 좋은 자산만 골라 가져가겠다고 했으며, 채권단은 더 많은 금액을 원했지만 협상력이 약했습니다. 결국 2002년 4월 최종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GM이 지불한 금액은 13억 달러로 우리 돈 약 1조 6,000억 원 수준이었고, 1990년대 중반 대우자동차 가치를 10조 원 이상으로 봤던 것에 비하면 헐값이었습니다. 2002년 10월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가 출범했고, 2003년 4월 GM대우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대우자동차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대우차 직원들이 남긴 것
2002년 대우자동차가 GM에 넘어갈 때 가장 아팠던 건 직원들이었는데, 수만 명이 하루아침에 회사를 잃었고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수십만 명이 영향을 받았으며, 부평, 군산, 창원 공장 지역 전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평 공장은 GM대우에 넘어갔지만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군산 공장도 마찬가지였으며, 살아남은 직원들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우차 출신 엔지니어들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로 퍼져나갔는데, 현대기아차로 간 사람들이 있었고 부품 업체를 차린 사람들도 있었으며, 대우에서 쌓은 기술과 경험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특히 세계 각지 해외 시장 경험은 귀중했는데,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들이 나중에 현대기아의 글로벌 진출에 기여했으며, 대우가 망했어도 그 유산은 남았습니다.
마티즈의 이야기도 특별했는데, GM대우 시절에도 계속 생산되었고 쉐보레 스파크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팔렸으며, 2023년 단종될 때까지 25년간 생산된 장수 모델이 되었습니다. 대우가 없어진 후에도 대우가 만든 차가 세계를 달린 것이었고, 이름은 바뀌었지만 혼은 남았으며, 티코와 마티즈로 서민들의 첫 차를 책임졌던 대우의 정신이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대우자동차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든 차들, 그들이 쌓은 기술들, 그리고 대우차를 타던 수백만 명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 2011년 이후, 이름이 지워지다
GM대우는 2011년 3월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대우"라는 이름을 완전히 지웠고 GM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맞게 정리했으며, 이제 대우 이름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로 차를 팔기 시작했고, 아베오, 크루즈, 말리부, 트랙스 등을 선보였으며, 일부는 대우 시절 플랫폼을 그대로 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GM도 순탄하지 않았는데, 2018년 군산 공장을 폐쇄했고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한국 정부와 협상 끝에 부평과 창원 공장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2023년 현재 한국GM은 연간 40만 대 수준을 생산하고 있는데, 전성기 대우차 90만 대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고,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등 SUV를 수출하면서 버티고 있으며, 예전 대우차의 부평 공장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우라는 이름은 이제 자동차에서 완전히 사라졌는데, 2019년 포스코대우가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이름을 바꿨고, 위니아대우도 위니아로 바뀌었으며, 한때 한국을 대표하던 이름이 하나씩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1955년 부산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서 세계 50개국에 차를 팔았던 대우자동차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으로 남아있고, 맵시와 티코와 마티즈를 타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았던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대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94 대우 레간자 펄화이트 ㅡ AI 이미지
대우자동차 시리즈 - 완결
2편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대우자동차 (1-2편): 1955년 김창원 형제가 부산에서 폐차를 고치며 시작했고, 1966년 토요타와 손잡고 한국 최초 승용차를 만들었으며, 1972년 토요타 철수 후 GM과 합작해 GM코리아를 세웠습니다. 1976년 새한자동차, 1978년 대우 경영 참여, 1983년 김우중의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를 향해 달렸습니다. 맵시, 르망, 티코, 레간자로 한국인의 삶을 채웠고, 50개국에 수출했으며, 1990년대 중반 연간 90만 대를 생산하는 글로벌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86조 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고, 1999년 8월 워크아웃, 2002년 10월 GM에 매각되면서 47년 역사가 끝났습니다.
1955년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서,
세계 50개국을 달렸고,
200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티코로 서민에게 차를 선물했고,
마티즈로 세계를 감동시켰으며,
수백만 명의 첫 차가 되어줬습니다.
회사는 사라졌지만 기억은 남았고,
그 기억이 대우자동차의 진짜 유산이며,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대우자동차 시리즈
2편의 여정을 마칩니다.
1997년 IMF가 터졌고,
86조 원의 빚이 드러났으며,
1999년 8월 워크아웃이 선고되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해외로 떠났고,
2002년 GM에 헐값으로 넘어갔으며,
47년 대우자동차 역사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티코와 마티즈는 기억되고,
수백만 명의 첫 차로 남아있으며,
대우의 이름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꿈의 끝 - 대우자동차 1955-2002
한국의 탄생 5편 완결.
다음 편: 쌍용자동차 1편 - 코란도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