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9월 15일, 밀라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에토레 부가티가 태어났는데, 아버지 카를로는 가구 디자이너였고 예술가 집안이었으며, 에토레는 어릴 때부터 아름다움에 집착했습니다. 16살에 자전거를 설계했고, 17살에 오토바이 엔진을 만들었으며, 18살에 파리 박람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기계를 예술품처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09년 독일 알자스 몰스하임에서 부가티 자동차를 설립했고,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비쌀 수는 없다(Rien n'est trop beau, rien n'est trop cher)"는 철학이었으며, 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예술품이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에토레 부가티가 어떻게 자동차를 예술로 만들었는지 만나봅니다.

ugatti Type 35 Grand Prix racing 1920s France ㅡ AI 이미지
🎨 1909년, 예술가의 공장
몰스하임 공장은 특별했는데, 일반 자동차 공장과 달랐고 예술가의 작업실 같았으며, 에토레는 모든 디테일을 직접 챙겼습니다. 엔진 볼트의 모양, 라디에이터의 곡선, 휠의 패턴까지 모두 아름다워야 했고, 기능적이면서도 우아해야 했으며, 타협은 없었습니다. 1910년 Type 13이 첫 모델이었는데, 작고 가벼웠으며, 1.3리터 4기통 엔진은 정교했고, 최고속도 100km/h는 당시 빨랐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능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고, Type 13은 조각품처럼 만들어졌습니다.
에토레는 독특한 원칙이 있었는데, "무게를 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었고 알루미늄을 적극 사용했으며, 엔진 블록, 휠, 차체까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습니다. 1920년대 다른 회사들이 철을 쓸 때 부가티는 알루미늄을 썼고, 무겁고 투박한 차들 사이에서 부가티는 가볍고 우아했으며, 이것이 부가티만의 정체성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생산을 재개했는데, Type 13은 "Brescia"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탈리아 브레시아 레이스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며, 레이싱이 부가티의 명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1924년, Type 35의 전설
1924년 Type 35가 등장했는데, 자동차 역사상 가장 성공한 레이싱카가 되었고 2,000번 이상 레이스에서 우승했으며, 15년간 유럽 전역을 지배했습니다. 2.0리터 직렬 8기통 90마력은 당시 최고였고, 알루미늄 휠은 혁신이었으며, 무게는 750kg으로 가벼웠고, 최고속도 190km/h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Type 35의 진짜 혁명은 디자인이었는데, 말굽 모양 라디에이터 그릴은 아이콘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모든 부가티에 적용되며, 유선형 보디는 공기저항을 줄였고, 모든 곡선이 완벽했습니다.
Type 35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는데, 레이스카였지만 일반인도 살 수 있었고 약 340대가 생산되었으며, 가격은 비쌌지만 젠틀맨 레이서들이 열광했습니다. Type 35B는 슈퍼차저를 달아 140마력으로 증가했고, Type 35T는 2.3리터 엔진을 탑재했으며, 여러 버전이 나왔지만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1920년대 그랑프리에서 부가티를 보지 못하는 레이스는 없었고, 타르가 플로리오, 프랑스 GP, 이탈리아 GP를 석권했으며, 에토레 부가티는 자동차 예술가에서 레이싱의 왕이 되었습니다.
👑 1927년, Type 41 로열
1927년 에토레는 극단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왕을 위한 차"를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Type 41 Royale이 탄생했습니다. 12.7리터 직렬 8기통 300마력은 역대 최대였고, 길이 6.4m는 롤스로이스보다 길었으며, 무게 3톤은 엄청났지만 부드럽게 달렸습니다. 가격은 3만 달러로 롤스로이스의 두 배였고, 1920년대 말 집 한 채 값이었으며, 오직 왕족만 살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왕들도 돈이 없었으며, 단 6대만 만들어졌습니다.
Royale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전설이 되었는데, 6대 중 몇 대는 박물관에 있고 나머지는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으며, 2024년 가치는 수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Royale 엔진은 나중에 프랑스 고속 열차 Autorail에 사용되었고, 항공기 엔진으로도 개조되었으며, 에토레는 실패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1930년대 부가티는 계속 발전했고, Type 57은 성공했으며, Atlantic 쿠페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꼽히고, 2024년 현재 4대만 남아있으며 한 대가 2010년 3천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예술이냐 기계냐
에토레 부가티는 자동차를 예술품으로 봤는데, 이것이 다른 제조사와 다른 점이었고 페라리가 성능을 추구하고 롤스로이스가 완벽함을 추구할 때 부가티는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Il faut faire quelque chose de beau(아름다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좌우명이었고, 기능은 그 다음이었으며, 먼저 아름답게 만들고 그 다음에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엔진도 예술이었는데, 에토레는 엔진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고 커버로 가리지 않았으며, 볼트 하나까지 아름답게 가공했습니다.
이 철학은 비용을 높였고, 부가티는 항상 비쌌으며,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특별했습니다. 에토레는 비판에 이렇게 답했는데, "내 차를 살 수 없으면 말을 타라(If you can't afford my car, ride a horse)"였고 오만해 보이지만 예술가의 자존심이었으며, 타협하지 않는 철학이었습니다. 1939년 에토레의 아들 장 부가티가 Type 57을 테스트하다 사고로 사망했고, 에토레는 충격을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1947년 에토레가 사망하면서 황금기가 끝났습니다.
🎯 1947-1987년, 침묵의 시대
에토레 사망 후 부가티는 방황했는데, 아들이 없었고 경영자가 없었으며, 1952년 마지막 차 Type 101이 생산된 후 35년간 침묵했습니다. 몰스하임 공장은 문을 닫았고, 부가티 이름은 사라졌으며, 역사 속으로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1987년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부가티 이름을 부활시켰고, EB110을 만들었으며, V12 쿼드 터보 560마력은 당시 최고였지만 1995년 파산했습니다. 부가티는 다시 사라지는 듯했고, 에토레의 유산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1998년 폭스바겐 그룹이 부가티를 인수했고,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이 결심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05년 Veyron이 등장했고, 1,001마력 W16 엔진은 충격이었으며, 최고속도 407km/h는 세계 기록이었습니다. 에토레의 철학은 살아있었는데, 빠르지만 아름다웠고 비쌌지만 특별했으며, 부가티가 돌아왔습니다. 2024년 Chiron은 1,500마력을 내고 있고, 부가티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하이퍼카를 만들며, 115년 전 에토레가 꿈꾼 예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88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고,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으며,
기계를 예술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1909년 몰스하임에 공장을 세웠고,
1924년 Type 35로 2,000번 우승했으며,
레이싱의 왕이 되었습니다.
1927년 Type 41 Royale을 만들었고,
왕을 위한 차였지만 6대만 팔렸으며,
전설이 되었습니다.
"Rien n'est trop beau, rien n'est trop cher."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비쌀 수는 없다. - Ettore Bugatti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