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8월 1일, 뉘르부르크링
니키 라우다의 페라리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2코너에 차가 벽에 박히더니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다른 드라이버들이 차를 세웠습니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끌어 내린 라우다의 얼굴이 타고 있었습니다. 폐에 독성 가스가 들어갔습니다. 그 날 임종 기도를 위해 신부를 불렀지만 라우다는 죽지 않았습니다. 42일 후 그는 다시 헬멧을 썼습니다. 화상 자국이 남은 얼굴로 몬차 서킷에 섰습니다.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이것이 페라리이고 F1입니다. 오늘은 레이싱이 페라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만나봅니다.

🏁 1950년, F1의 시작
1950년 5월 13일 영국 실버스톤. 첫 F1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페라리는 당연히 참가했습니다. 엔초 페라리에게 F1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으니까요. 그는 평생 레이싱을 위해 살았고, F1은 레이싱의 정점이었습니다. 첫 시즌 페라리는 알베르토 아스카리로 3승을 거뒀습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F1은 마냥 쉽지는 않았습니다. 메르세데스,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습니다.
1952-1953년 페라리가 폭발했습니다. 아스카리가 2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했고, 페라리는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엔초는 기뻤지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F1은 끝없는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한 번 이긴다고 끝이 아닌 매년 새로운 차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드라이버를 발굴해야 합니다. 멈추는 순간 뒤처진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엔초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 1976년, 라우다의 선택
니키 라우다는 1974년 페라리에 합류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냉철한 드라이버였죠. 1975년 챔피언을 차지했고, 1976년에도 우승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8월 1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화염. 화상. 폐 손상. 의사들이 말했습니다. "레이스는 끝났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하지만 라우다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42일 후 몬차 서킷에 돌아왔습니다.
헬멧을 쓰는 게 고통이었습니다. 화상 자국에 헬멧이 쓸렸습니다. 숨쉬기도 힘들었습니다. 폐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라우다는 차에 탔습니다. 4위.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돌아왔고 페라리 전 팀원들이 울었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아무 말 없이 라우다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해 챔피언은 제임스 헌트에게 넘어갔지만, 라우다는 1977년 다시 우승했습니다. 페라리는 그를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티포시,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팬
티포시(Tifosi). 이탈리아어로 "열성 팬"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페라리 팬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응원하지 않습니다. 살고 죽습니다. 페라리가 이기면 이탈리아 전체가 축제입니다. 페라리가 지면 온 나라가 슬픔에 빠집니다. 몬차 이탈리아 그랑프리. 15만 명의 티포시가 몰려듭니다. 빨간 옷을 입고, 페라리 깃발을 흔들고, 이탈리아 국가를 부릅니다.
1988년 몬차. 페라리가 1-2 피니시를 했습니다. 관중이 서킷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찰이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만 명이 트랙을 뒤덮었고, 드라이버들을 어깨에 메고 돌았습니다. 이것이 티포시입니다. 페라리는 이탈리아의 자부심입니다. 국가 대표팀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페라리는 F1을 떠날 수 없습니다. 티포시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2000년, 슈마허의 황금기
1996년 미하엘 슈마허가 페라리에 합류했습니다. 독일 출신 천재 드라이버였죠. 베네통에서 이미 2번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페라리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페라리는 16년간 챔피언이 없었습니다. 1979년 이후 암흑기였죠. 하지만 슈마허는 믿었습니다. 페라리를 되살릴 수 있다고. 그리고 그는 해냈습니다. 2000년 21년 만에 드라이버 챔피언십. 슈마허가 울었고, 이탈리아가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시작되었습니다.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5연속 챔피언. 페라리도 6연속 컨스트럭터 타이틀(1999-2004). 역사상 최강의 조합이었습니다. 슈마허와 페라리. F2004는 15승을 거뒀고, 시즌 18전 중 15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너무 강해서 지루하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페라리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기는 게 목표였으니까요. 슈마허는 2006년 은퇴했고, 페라리는 다시 긴 침체기에 들어갔습니다.
🏆 16회, 역대 최다 우승
2024년 현재 페라리는 F1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16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위 메르세데스(8회)의 두 배입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도 15회. 총 그랑프리 우승 243회. 모두 역대 최다 기록입니다. 페라리는 1950년 첫 시즌부터 단 한 번도 F1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74년간 매 시즌 참가했습니다. 이것도 기록입니다. 다른 팀들은 왔다 갔다 했지만 페라리는 남았습니다. 왜? 엔초의 철학 때문입니다. "페라리는 레이싱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2008년 이후 페라리는 챔피언이 없습니다. 16년째 침체기입니다. 샤를 르클레르, 카를로스 사인츠가 열심히 싸우지만 메르세데스와 레드불의 벽은 높습니다. 티포시는 기다립니다. 언젠가 다시 페라리가 정상에 설 날을. 그날이 오면 이탈리아 전체가 축제를 벌일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페라리는 오늘도 달립니다. Rosso Corsa로 칠한 차와 함께.
🔧 레이싱이 도로를 만든다
페라리 도로용 차의 모든 기술은 F1에서 왔습니다. V12 엔진, 듀얼 클러치 변속기,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능동 공력 시스템. 모두 레이스에서 검증된 기술입니다. 엔초 페라리가 말했습니다. "레이싱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차를 만든다." 페라리 488 GTB는 F1의 터보차저 기술을 사용했고, SF90 Stradale은 F1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페라리를 사는 사람은 F1 기술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페라리는 절대 F1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16년간 챔피언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F1이 페라리의 심장이니까요. F1 없는 페라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치 엔진 없는 차처럼. 티포시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챔피언이 올 거라고. 그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그날이 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가 열릴 것입니다. 몬차에서.

1976년 니키 라우다가 불타는 차에서 나왔습니다.
42일 후 그는 다시 헬멧을 썼습니다.
2000년 슈마허가 21년 만에 우승했습니다.
이탈리아 전체가 울었습니다.
16회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74년간 단 한 번도 F1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Racing is in our DNA."
레이싱이 우리의 DNA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